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Jul 21. 2023

반년 넘은 술래잡기의 결말.

- 다시는 너랑 안 해! -


"너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슬픈 눈동자로 읊조리던 당신의 말을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 옛날에는 많이 웃었네.."

아이가 할머니집에서 본 나의 결혼 전 사진들을 보며 하던 말을 넘겨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며느리 데리고 병원 좀 가보는 게 어때?"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했던 그 말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단단히 걸려버렸다. 

올해의 첫날부터 우울이라는 술래가 무섭게도 쫓아오기에 내 등에 닿을까 봐 도망치듯 열심히 달렸는데 기어코 잡혀버렸다.


내 다리에 엉겨 붙은 우울은 발로 밟고 짓이겨도 그대로였다. 내 아이의 형태의 진득한 장난감처럼 내기가 여간 쉽지 ,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모두 해보며 버둥거렸건만 소용이 없더라. 이제 도망칠 힘이 없다. 고요히, 적막하게 혼자 내버려지고 싶다.


기운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샘솟을 때까지. 잠시만.



'여행'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해보지 않아서, 더 갈망하게 되는가.

해보지 않아서, 더 주저하무관심하게 되는가.


수십 년을 살며 '혼 + 여행'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올해 우울의 덫에 단단히 걸린 후,  여행이라는 것을 핑계로 잠시만 사라지고 싶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려는 여행이 아니라, 어디로든 숨어서 무엇도 하지 않는 것, 그 해보지 않은 '여행'이라이루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간절했다. 언젠가 그렇게 벗어나고 , 시간을 초월한 듯한  사무치게 고독했던 공간이 그리워 '혼자 여행'이라는 것이 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니 '운전'이 하고 싶더라.

같은 소심한 겁쟁이는 운전이라는 것이 어렵다. 규정속도를 유지해도 울려대는 경적이나 라이트를 깜빡임을 받는 것이 무섭고, 그것이 무서워도 속도를 높이지 못한다. 차선의 한쪽으로 치우쳐 운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탓에 옆 차선에서 조금만 가까이 와도 돌고래 소리가 절로 난다. 노란불도 너무나도 두렵다. 멈추면 경적이 울리는 것이 두려우나, 멈출 수밖에 없는 내 마음 때문에 정신이 아찔하다. 면허를 따고 한 달을 꼬박 운전해 보고 돌고래 소리를 내느라 목이  그만두었다.


그랬던 운전이 하고 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사람이 없는 로만 찾아가 로 채워진 고독의 공간 멈춰있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어디든 무작정 세워두고 혼자 차 안에 있고 싶다. 


그저 내가 사라지고 싶은 순간 마음 편히 숨을 수 있는 나만의 도피처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 지금 그런 곳이 내게 없다. 


내가 없어도 되는 시간은 얼마인가. 것이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 만 사라지고 싶다.


교란스런 마음을 버려두려면 작은 일상들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두면 될 일.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작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을 하는 존재, 그저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사실은 어떤 것보다도 근사한 일이니, 내 일상의 정지 버튼 앞에서 나는 그 한 문장과 함께 잠시만 멈춰있고 다.



당장의 차비도 없던 예전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상상만 해볼 뿐, 그것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까워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당장 달려가 마주치는 버스나 기차에 올라탈 수 있다. 내겐 이제 차비 정도의 여유는 부릴 수 있으니. 하지만 이젠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질 아이들이 있으므로 그런 마음은 고이 접어둔다. 그렇게 본다면 더 멀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차비도 없던 시절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날 땐 어디든 떠나보겠다고,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름만 들어도 근사한 어떤 곳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음 편히' '혼자' 떠나보는 일, 그것이 내가 꿈꾸는 근사한 '여행'이었다. 이제 나는 기차표를 사거나 버스요금을 낼 수는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마음 편히''혼자'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올해의 많은 날들이 당장의 나의 상황에서 도망가고픈 생각으로 가득했고, 그래서인가 차 안의 단절된 공간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부릉부릉 달려 아름다운 곳들을 마음에 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그 안에서 마음껏 혼자 머무르고 싶어서. 떠나지 않는다고 해'마음 편히'와 '혼자'가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그래서 운전이 하고 싶었다.


운전하지 않아도 차 안, 그 안에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은 것이다. 거를 수 없는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과 챙겨야 하는 가족들의 일과 그리고 내가 만든 나만의 루틴의 강박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그러지 못하는 내가 그러려면 그 공간에서 나를 도려내야 한다. 도려내어 어디로 옮겨 놓으 좋을까.


도려내어서라도 나에게 들러붙은 우울로부터 조용히 도망가고 싶다. 그래. 그럴 때가 있더라.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때. 지금 내게 다시 그런 때가 온 것일 뿐.


원하는 만큼 고요해져 보고 싶다. 

고요함에 지쳐 삶의 열기가 피어오를 때까지.




이렇게 축축했던 올해의 마음들을 몰래 꺼내놓았던 이 글을 읽어 내려가고 있을 때, 아이가 내게 여행을 했다.


"엄마도 저기 갔다 와! 마음이 편안해진대!"

본인의 가려운 몸에 스스로 크림을 바르던 중, 보고 있던 채널에서 '네팔 여행기'가 방영되고 있었고, 그중 '싱잉볼 체험'이 나오고 있었다.


"엄마마음이 불편해 보여? 그럼 엄마 2주 정도는 없을 텐데, 괜찮아?"


"그런 건 상관없어! 나는 엄마마음이 편안한 게 제일 좋아! 가서 문자 .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이던 의 눈망울과 야무진 입꼬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울과의 긴 술래잡기는 단번에 다.

의 그 한마디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결말로.


혼자 극복해보려 했는데 올해는 완패.

당장 아이들의 방학과 엄마의 병원료를 앞두고 있으니, 내일은 마음병원에 가보련다.


네팔로 날아가 싱잉볼 체험을 하고 방금 돌아온 것처럼 편안해져 돌아올게.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너는 모를 너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