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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ug 25. 2023

"사진이랑 너무 다른데..."

- 제주공항에서 '당신은 내게 모욕감을 줬어:D'-

이 일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끝까지 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그분에게 감사해할 테지만, 감사함만큼 부끄러웠다.


한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하지 못할 뻔했으니.




가족들과 제주에서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탑승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를 챙겨 줄을 서고 보니, 사람들이 꽉 들어차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우리 차례가 왔고 심사대 앞 공항직원이 내게 무어라고 말을 하였으나,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오랫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나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그러던 그가 대뜸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이 분 누구야?"

"우리 엄만데요?"

"엄마 이름이 뭐지?"

"린이요!"

"사진이랑 너무 다른데..."


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그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눈치가 없는 나는 심각하게 궁금하여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듣고 있던 남편은 크게 웃음이 터졌고,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이 동그래졌으며, 아이들은 우리 엄마한테 왜 그러냐며 구시렁거렸다.


사실 보안 검색까지 다 마친 후에 남편이 설명해 주고 나서야 이해했다. 나의 지금 모습이 사진이랑 많이 동떨어진 탓에 생긴 일이란 것을.


서울이 목적지였으니 망정이지, 타국이었으면 잡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나.


그러고 창에 비친 나를 보니, 머리카락부터가 비에 젖은 생쥐처럼 엉망이었고, 화장품도 바르지 않고 나온 탓에 낯빛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랬구나. 세상에.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아토피를 가진 터라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는 준비물이 무척 많았다. 그중 그들의 필수품인 바디크림이 어지간히 무거웠다. 여행을 가면 물놀이를 하게 되는 법, 성인체격을 가진 남자 3명이 며칠 동안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충분히 크림을 챙기고 나면 가방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리고 각종 보습제와 스테로이드 연고, 아나필락시스와 가려움을 위한 비상약들, 외부음식 섭취에 주의해야 하므로 안전한 비상식품들, 무거운 면옷들. 무거웠지만 불안하여 하나도 빼놓을 수 없었다.


짐들로 출발하면서부터 지치는 일이 싫었다. 그래서 사실 난 나의 외출복들이나 화장품을 거의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같이 나온 사진 속 나는 매일 같은 옷차림이었다. 많은 짐을 그렇게라도 줄여보았지만, 그럼에도 항상 너무나도 무겁더라.


그래도 챙겨야 했다. 메이크업도, 예쁜 옷도. 이렇게 세월 흐르는 동안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내가 보아주지 않았더니, 나만 나를 몰랐던 것이다.



난 거울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화장품 바를 때를 제외하고는 꺼내어 보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의 세상기준으로 어여쁘지도 않았거니와, 내가 나의 마음에도 들지 않아서였을까.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니 마지막으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던 때가 국세공무원 원서 쓸 때 즈음이지 싶다. 그러니까 20년 전. 당시 그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직장의 조직도에도, 공무원증에도 나는 그 사진으로 나를 대신했고, 바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운전면허증 갱신기간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사진을 찍으러 갈 시간도 나지 않았던 나는 갱신기한이 임박해서 면허시험장으로 달려갔다. 잔뜩 차려입고 집에서 사진을 찍어 증명사진의 크기로 편집한 다음, 그 사진을 들고 달렸던 기억이 난다. 나의 순번이 되어 사진과 함께 기존 면허증을 드리고 갱신을 요청했다.


"아이~~~! 어느 정도로 보정을 해야지!"

갑자기 언성을 높이시기에 집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것뿐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때는 보정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없었고 할 줄도 몰랐다. 핸드폰은 자체 보정이 된다며 왜 사진관을 가지 않았냐고 크게 나무라셨다. 나의 말도 안 되는 사진발에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하필 그날은 갱신기한 바로 전날이었던 터라 언짢으신 상태로 그저 발급해 주셨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그 사진을 꺼내지 않았다. 그날의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한 마음을 꺼내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당장 사진관으로 달려가 사진을 다시 찍었어야 는데, 그 급히 발급받은 운전면허증 때문에 결국 공항에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제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진관으로 가 증명사진을 찍었다. 20년 만에 찍은 증명사진, 이것으로 이것저것 사진을 바꿔야겠다며 크게 마음을 먹고 감지 않은 머리카락도 풀고 간 것인...


이를 어쩌나.


20년 동안 보정기술이 대단히 발달하여 결과물은 다시금 현실의 나와 멀어져 있더라. 또다시 제주공항에서 발이 묶일 것 같은 몹시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난 보정 전으로 돌리지 않았.


사진을 다시 찍던지, 여행 갈 때마다 변장에 가까운 메이크업을 하고 공항으로 가던지. 거듭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야 할 모양이다.




현실 속 나는 점점 세월을 먹어가고 있지만, 사진 속 나는 점점 세월을 거슬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10년 뒤, 현실 속 나의 모습과 사진 속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때에도 말이 안 되는 이 간극을 못 본 척하며 보정 전으로 돌리지 않으려나? 공항 심사가 두려워 여행을 포기한 것은 아니기를.


겉모습도 물론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속 모습이 심히 궁금해진다. 반절 이상 채워져 있던 나의 친구 우울이 아주 조그마하게 남아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용기 내어 다른 감정친구들도 담아낼 테니, 부디 그가 너그러이 자리를 크게 양보해 주면 좋겠다. 마음에 보석 같은 순간들과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길 감히 소망해 본다. 

그러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렇다면, 

먼저 양심적으로 사진을 다시 찍어볼까: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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