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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08. 2023

아찔하고도 슬픈 너의 말

- 사직 전 vs 후 -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다재다능하기까지 하며 마음 안에 긍정적인 희망과 용기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부담 없이 사직을 결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과 완벽하게 반대인 나는 사직서를 써두고 제출하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렸다.


커리어나 꿈과 같은 것들은 이미 마음에서 오래전에 버렸으므로 그것은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적인 경제상황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사직'의 마음이 승리를 거둔 단연코 나를 깨우쳐 준 아이 말이었을게다.




엄마처럼 사는 게 어른이 되는 거면
난 어른되는 거 싫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놀지도 못하는 게 어른이면
난 어른 안 해!


아이의 이 말이 발단이었지 싶다. 출근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이런 나를 보며 아이는 무엇을 꿈꾸며 살아갈까.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건가.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어른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 하루종일 회사에서 무슨 일해?
나도 한번 가보자.
엄마 일 하는 거 보고 싶어!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열심히 일했다. 성공이라 일컫는 길에 비추어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매일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아이에겐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이 이상한 상황을 네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언제 거칠고 위협적인 말들이 쏟아질지 가늠할 수 없는 일, 전화로 전해질지 직접 달려와 쏟아내어 질지 모르는 일, 그렇지 않은 때를 골라 10분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골라낼 수 없으므로 자신 없는 일이었다. 마주하고 마주해 보아도 나의 마음이 단련되거나 분노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력은 향상되지 못했, 더욱더 숨만 가빠지던 그곳 안의 나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라도 사무실에서 더욱더 오그라져있는 나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습이 왜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은 장면이 되어버렸을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삶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가 직장을 다니던 때에 아이에게 들었던 가장 슬펐던 말은 그곳 안에서 나를 잃어버리유령처럼 살아내고 있던 나를 톡톡 깨우던 말이었다. 물론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나를 살려낸 소중한 말들로 남았, 그땐 그런 줄도 모르고 한동안 슬펐다.




괜히 아들 두 명 낳아서
엄마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고, 미안해.



사직 후, 두 아이 모두 아토피를 가진 에게 방학은 잘 만들어 먹이고 바르는 일까지 더 신경 써서 한 학기 동안 이겨낼 탄탄한 피부를 만들어놓는 시간이기도 다.


우리는 밑반찬을 만들어두지 않고 음식이 남지 않도록 매끼 조금씩 요리해 다 먹고 비우는 편이다. 그러니 방학이라고 더해진 건 겨우 두 끼, 아침과 점심, 원하는 걸로 만들어 먹이고 설거지하는 일만 더해졌음에도 나의 시간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신경 쓰는 만큼 피부도 보들보들해지고 먹을 때마다 이것을 만들어 팔면 세계최고의 부자가 될 거라며 극찬을 해주니, 즐거이 먹이고 바르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그랬던 어느 날, 아이가 내게 청소를 하고 자라고 말했다. 방학 동안 나의 시간이 더욱 없어진 터라, 아이들이 자러 가면 난 눈 감길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혹여 잠이 깰까 봐 고스란히 두유령처럼 자러 들어갔다. 그리하여 아침이면 이리저리 흩뿌려놓은 색연필과 조구마한 미술재료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던 탓에 나온 말일게다.


"요즘 그림그릴 시간이 없네. 재료 정리는 그림 하나 다 마치고 해도 되지?" 

"괜히 아들 두 명 낳아서 엄마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고, 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과연 나는 엄마라는 자리에  자리 잡아가고  가.




엄마라는 자리에 서고 나서 무엇을 할 때마다 항상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지금 이거 해도 되나?'


청소나 빨래, 요리 등 가족 모두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 드는 생각이 아니다. 날 위한 일을 할 때만 드는 생각. 나의 경우에는 그림이 그리고 싶은데, 언제나 '내가 지금 이거 해도 되나?'를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들의 스케줄을 다 챙겨 두었는지, 대충의 집안일은 모두 끝내두었는지, 남편과 아이들의 저녁 메뉴와 식재료까지 다 구비해 두었는지 머릿속으로 점검해 보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는 이다. 그러고 나서도 아이들과 남편,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으로는 수도 없이 눈치를 보며 하게 되는 일.


그렇기에 나의 "그림 그리는 중이야."라는 말에는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어렴풋이 다 마쳤다는 의미가 된다.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살피게 되더라도 고요히 자석에 이끌려 가는 철가루처럼 끌려가하고야 마는 일, 그토록 즐거운 일이다.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 많은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일.


그래서 아이의 그 말에 심장이 쿵하고 소리를 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너무 유별나게 했구나. 이게 뭐라아이가 엄마에게 저렇게 말하도록 두었나. 그날밤, 소심한 비관주의자는 끝도 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할퀴어대니 그저 아팠다.


아들 두 명을 낳은 것도 '나'이고, 하고 싶다고 악착같이 하고 있는 것도 '나'이니, 단연코 나는 몹시 탐욕스러운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제껏 무욕한 나라고 자신했었는데, 참으로 커다란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매일밤 아무리 잠이 오더라도 정리까지 완벽하게 해 두고 자던지, 아이가 미안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던지 해야 할 테지만, 이 욕심쟁이 엄마에겐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봐. 그러다 몹시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나면 그게 무엇이든 언제든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


아무리 말로 전하려고 해도 아이들에게 잘 잡히지 않는 듯한 저 멀리 보이는 말들을 아이들 눈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나 때문에 뭉개져버린 것 같은 '어른'이라는 단어에 신비로운 환상을 고이 담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의 말에 정신이 아찔했다. 아이핑계를 대고 탐욕스럽게 심취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 오늘부터 자기 전에 청소마저 해보련다. 


이렇게 욕심쟁이 엄마는 오늘도 뭉게뭉게 욕심 하나가 더 늘고 말았다. 


벌써 피로함이 저 멀리서부터 려온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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