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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15. 2023

사직 후 가난, 샘솟는 구매욕 제거법

- 가을이 온다. 괜찮아, 아니 괜찮지가 않아... -

가난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을 사무치게 느끼며 살아왔다. 그것은 단순히 의식주에 제한을 두는 일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어볼 시간도 앗아가고, 감히 호기심 금지령을 내렸으며, 결국엔 꿈도 꿀 수 없게 만들었다. 적어도 소심한 겁쟁이인 나에겐 그랬다.


내게 가난이라는 건 돈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물론 이제와 돌아보니 그것마저도 내가 만든 변명에 불과하다는 을 깨달았지만. 사직으로 살금살금 가난이 스미고 있는 지금 적어도 아이들가난에 멈칫하지 않, 몹시도 사소하고 말도 안 되는 꿈이라 할지라도 무엇이든 꿈꾸며 가난이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남편과 같은 직업에 입사일마저 동일하므로 난 그의 급여체계를 매우 잘 알고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도 공무원 월급은 엑셀표로 잘 정리되어 있기도 하고. 그렇기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나는 사직 이후 삶의 비용을 계산하는 일을 부러 포기했다.


계산하는 일을 좋아하고 틀에 갇힌 계획적인 삶을 살아왔던 나로서는 그것이 대강 짐작이 가기에 과연 무서웠다. 세세히 계산을 마치고 나면 더욱더 거대한 불안에 휩싸여 난 또다시 꿈꾸지 않을 테니 굳이 마주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머릿속에서는 보험료, 관리비, 교육비, 식비 등이 절로 더해지고 월급에서 빼지기까지 하면서 빨간색으로 마이너스가 진하게 그어졌지만, 도리질하며 우주 밖으로 쫓아버렸다.


알고 있다. 손으로, 눈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힘겹게 버티며 땀을 흘리고 있는 통장 안 숫자들을 잘도 알고 있다. 그것이 나의 사직의 결과라는 것도. 그렇기에 사직 이후 무언가를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들지 않았으나, 그런 내게도 이따금씩 구매욕이 송송 샘솟을 때가 있으니 이럴 때엔 그것을 살살 잘 달래주어야 한다.



시원한 바람이 목을 감싸오니 과연 가을이 오고 있다. 이렇게 계절이 바뀔 때면 아이들도 깔끔하게 새 옷으로 입혀주고 싶고 그것들 안에 내 것도 몰래 조금 끼워 사고 싶은 마음이 솔솔 불어온다.


그럴 땐 옷장을 두 손으로 활짝 다. 그리고 모두 다 샅샅이 꺼내어 옷장 닦는 일부터 시작한다. 작아진 여름옷을 빼어 수거함에 내어놓으면 옷장 안에 깔끔해진 새 공간이 생겨난다. 그것부터가 새 옷을 산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 된다.


지난 같은 계절 입었던 옷가지들을 곱게 개어 정리하고 나면 이렇게나 입을 옷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새로이 산다고 해도 이 스타일에서 분명 벗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새것을 탐하는 마음이 절로 콩알만 해진다.


게다가 예전에 입었던 옷을 개다 미처 지워내지 못했던 얼룩을 발견하고 나의 얼룩제거비법으로 지우고 고운 향기까지 입혀내고 나면, 그게 무어라고,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분명 예전에 입었던 옷들이지만 깨끗하게 정리해 둔 옷장을 아이들이 보고 나면, 입을 옷이 없다거나 새 옷을 사달라거나 하는 일은 없더라. 나만큼이나 패션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라서 그렇겠지만.



나의 경우 사직과 동시에 계절별로, 행사용으로 몇 벌씩만 두고 나머지옷들을 모두 정리했기에 오히려 계절 바뀔 때마다 고민할 일이 별로 없어졌다.


그럼에도 깔끔한 옷을 보면 욕심이 나는 때가 있고 그럴 때엔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므로 그렇게 담아두고 나면 잊게 되는데, 어쩌다 무심결에 담아둔 옷을 확인하고 보면 계절이 지난 때도 있고 다시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구매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핸드폰에 공인인증서나 간편 결제 등 결제를 위한 것들이 애당초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매를 위해서는 카드를 꺼내와야 하니 간절히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한 구매로 이루어지긴 어렵다.


게다가 카드는 남편의 카드이므로 결제를 하면 그에게 문자로 고스란히 전달되, 저 깊은 나의 마음속에는 구매욕이라는 것이 명상을 하며 꾸역꾸역 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참는대도 일 년에 10센티미터 이상씩 크며 옷이나 심지어 신발에도 구멍을 내어오는 두 아들의 계절맞이만으로도 거대한 쇼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기회를 기다렸다가 아이들 새 신발 한 켤레씩, 반값할인이나 각종 행사로 득템하고 나면 나의 구매욕은 즐거 사라지고 만다. 


올해 부쩍 커버린 아이들을 위해 이번엔 각종 행사 때 받은 상품권을 모아두었더니, 이 깊은 빈곤 속에서도 마음이 두렵지가 않다.



그래도 매번 이렇게 가난 안에서 헤엄칠 순 없으니,

브런치야!

공모전의 수많은 보물작품들 중에서도 나의 브런치북도 꼭 한번 읽어주렴:)


응모버튼이 두려운 소심이의 첫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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