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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22. 2023

***- 생일월간 -***

- 생일주간이 아닙니다...-

"여름이네! 조금 있으면 가을이다. 내 생일 다가오는 거 알지?"

몇 달 전 그가 말했다.


"다음 달에 내 생일인 거 알지?"

한 달 전 그가 말했고,


"이번 달에는 내 생일이 있어서 약속이 많네."

9월의 첫날부터 그가 말했으며,


"다음 주중에 내 음력생일이 있다고 이번 주말에 엄마가 집으로 모두 오라고 하셔!"

양력 생일을 2주 앞두고 그가 말했거니와,


"다음 주 내 생일이니까 주말에 나랑 데이트하자."

그의 탄생일 한 주 전, 그는 신이 나서 내게 말했다.




결혼을 하고 유일하게 불편한 점이라면 챙겨야 할 생일이 거의 매달, 같은 달에도 여러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일을 거창하게 축하하며 살아오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것이 싫은 일이라기보다 몹시도 익숙지 않고 편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불편한 일이었다.


남편, 아이 둘,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시할머니, 남편 동생과 가족들, 나의 동생과 가족들, 그 외 종종 마주하는 친척들의 생일들. 거기에 돌잔치, 환갑, 칠순, 팔순잔치, 결혼 등 각종 이벤트가 산재하니, 침묵 속에서 살아오며 왁자지껄한 나날들을 경험해보않았던 나의 경우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와 나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다. 그에게 나도 그랬다지만,  또한 당신이 이상해서 좋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수년동안 무수한 일들을 함께 겪고 면 '이래서 그는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많은 부분들이 절로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된다고 해도 그것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그중 내게 여전히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생일영역'이다.



언제나처럼 그의 생일이 속한 , 그의 스케줄은 수많은 약속들로 가득 차있고, 한 달 동안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우며, 내내 신이 나서 웃는 고양이상이 되어 있다. 일 년 중 생일하루를 도려내고 싶은 나와는 완벽하게 반대인 사람, 자신의 탄생일을 스스로 가장 축복주고 감사해하는 사람, 나는 아직도 그가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가 참으로 부럽다. 그의 어머니는 재료를 바꿔가며 미역국을 몇 번이고 끓여 가져다주신다. 각종 잔치음식들과 함께. 그리고 사고 싶은 거 사라며 손으로 직접 쓴 꼬깃꼬깃한 돈봉투를 반찬통 사이에 숨겨놓으시곤 음력이든 양력이든 생일 축하한다고 새벽부터 전화를 주신다. 


그와 똑같이  생일에도, 아이들 생일에도 지난 수년간 음력과 양력으로 생일을 두 번씩 성대하게 챙겨주셨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집안에 완전히 틀어박혀 지냈던 때에는 조용히 오셔서 생일상을 차려주시고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라며 조그마한 돈을 쥐어주시고는 축하한다고 안아주셨다. 그때의 따스함을 잊지 못한다.



생일 때마다 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입이 귀에 걸린 남편을 보면 이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았기에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알고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구나 싶더라.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내어도 매 순간 감사함과 행복함을 찾아내어 말로 소리 내어 표현하 그를 보며, 나는 엄마라는 자리에서 나를 돌아보게 다. 그렇게 숨기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그의 가족들 보며 소리 내어 사랑을 쌓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인 게다.




"그나저나 내 생일인지 네 생일인지 모르겠어."

드디어 도래한 그의 진정한 생일날, 그가 말했다.


그런가.


일 년에 한 번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간다. 그의 생일 즈음.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야망 덕분으로 15년 동안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 즐겨왔다.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예매를 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는 본인 생일 즈음이면 그가 보고 싶은 것으로 골라 제일 좋은 좌석으로 예매해 두니, 난 아무런 노력 없이 보러 가기만 하면 된다.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 내가 벌이가 없는 탓에 본인이 돈을 아끼고 모아 예매까해야 하니 미안할 뿐이다.

다음엔 내가 보여줄게:)


게다가 이번에는 직장에서 개최한 1박 2일의 가족캠프에 당첨되어 하필 생일날, 그는 아이 둘과 강원도 어딘가로 떠나게 되었다. 직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한 나만 제외하. 캠프에 참여한 스무 가족 중 엄마가 참석하지 않은 가족은 우리 가족뿐이었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가 일 년 내내 기대하고 고대하던 생일날, 나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생일 때마다 지독한 우울에 시달리는 내게 이것은 생일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1박 2일 동안 가을맞이 대청소로 시간을 다 써버렸지만 혼자 하는 대청소는 잔뜩 신이 나더라.


하지만 못된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캠프의 루지 체험을 하던 도중 둘째 아이가 크게 나동그라져 치료 중이고, 첫째 아이는 오자마자 심한 구토와 설사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없는 자유스러운 여행에 둘 다 큰 상처를 남길 만큼 과도하게 흥분했던 모양이다. 나도 느낀 바가 많았던 시간이었고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었길, 그저 바라본다.

행복했구나...


그의 탄생일이 지난 지금, 우린 여전히 얼굴을 보기 힘들다. 난 아이들의 병원으로 바빠졌고.



그러니 내 생일 아니고 당신 생일 맞아.
마음껏 즐겨요.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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