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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Sep 28. 2023

화실의 최연장자

- 아직도 여전히 지구별의 외계인 -

지금껏 살아오며 나는 과연 무엇에 어울린 적이 있었던가. 아직도 모르겠는 이 지구별에서 무언가에, 누군가에 스스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내 생각만은 아니었던지,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참 이상해, 너."이지 싶다.


그러서일까, 낮에 뜬 달을 좋아한다.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달이나 눈부시게 빛나는 별보다 꺼져가는 별빛을 좋아하고,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도 없는 조구마한 것들에 애정이 많다. 어울리지 않은 듯 보이지어느 것보다 근사하게 어울리는 미세존재들에게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낮+달 = ♡"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아니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

조금만 건드려도 마음이 소보루 가루처럼 터실터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나에게는 어울려 살아가는 일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단단하지 못해 으스러지고 주워내기도 어려운 그 가루의 형태 때문일까, 외면되고 짓밟혀 어우러지는 일이 그야말로 혹독한 일이 되어버리더라.


열심히 애를 써보고 그렇게 수십 년을 살고 나면 조금은 덜 이상해질 줄 알았다. 조금 더 어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산책이 아니고서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사람, 그렇기에 나는 한 주의 외출계획을 세워두는 편이다. '마음의 준비'라고나 할까. 그런 내가 예외 없이 외출하는 일은 오직 하나, 토요일의 화실이다.


2년째 다니고 있는 이곳 이제까지는 적응하느라 그 공간 안의 나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압도적인 '화실의 최연장자'였다. 


'최고령자'라는 단어보다 '최연장자'라는 말이 조금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여하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 거다.



나이.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일, 그야말로 사실이다. 불가피하고 통제불가능한 영역.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나는 주저앉히거나 뭉그러뜨리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듯이, 그것 또한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약점을 넘어 강점으로 만드는 일. 그것은 내가 노력하여 바꾸어볼 수도 있는 이다. 완벽하게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노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일인 것이다.



내 안에 내가 없던 때엔 때때로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나를 보면 언제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다른 이에겐 내가 전과 다름없이 외롭고 쓸쓸 지내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난 나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 주는 내가 있기에 외롭지 않다. 작은 하나의 응원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낀다.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이기에 그럴까. 



덕분에 '화실의 최고령자'는 이제야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졌다. 기꺼운 마음으로, 어설픈 두 손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까.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는 가장 나이가 들어버린 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그런 거창한 탐험은 아닐 것이다. 결국에는 고작 현관문을 열고 나가 나의 단단한 마음을 열어내는 일이 다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다. 이런 사람도 있는 거다. 


그렇게 '참이상해'라는 꼬리표는 영원히 뗄 수 없을지도 모르겠.


용기를 메고 건너오는 꿈과 환상의 세상




최근에 물과 불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서로의 세상으로 뛰어들어 전혀 다른 두 물질 사랑에 빠지게 되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각자의 세상에선 일상적인 일들서로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것이다.


나 또한 보통의 모습을 가지고 지극히 예사로운 그림실력을 가진 평범인으로, 오랜 시간 그것을 연마해 본 적도 없고 감히 화려한 아티스트의 꿈을 꾸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위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나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약을 꿀꺽 삼켜내듯 그림으로 나의 시간을 꿀꺽 삼켜왔다. 그렇기에 작품의 결과에 상관없이 재료의 준비부터 모든 과정들이 나에겐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뛰어들어온 새로운 세상이었기에.


부디 그것이 '이상해'라는 단어보다 '특별해'나 '신기해'라는 단어에 가까워 보였으면 좋겠다.



지독하게 벗어나고 싶다면, 변화하고 싶다면 용기를 내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 보아야 한다. 나 같은 소심한 겁쟁이는 그 마음을 쌓는 데까지 몇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내겐 그 전의 세상에서 보낸 시간들도 새로운 세상으로 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아깝지가 않다.



걱정과 불안, 부끄러움, 두려움과 같은 숨기고 싶은 마음들을 모아 이전의 세상에 꺼내두고 토요일이면  이곳, 새로운 세계로 넘어온다. 부들부들 몹시도 떨리지만 당당하게 '화실 최고 연장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다시 나만의 세상으로 돌아와 명상과 산책 하고 글도 쓰내 안의 용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단단하게 모아 덩이를 가방에 넣고, 토요일이면 힘껏  새로운 세계로 건너온다. 열심히 한아름의 환희를 더하여 넘어올 것이다.


조금 더 용기 내어, 조금 더 희미하게 빛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지구별에 미미하지만 소중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어울려가고 싶다.

'참이상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런데 뗄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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