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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Oct 10. 2023

브런치북 별책 부록

- 첫 브런치북 발간자의 조잘투정기 -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는 '설렘> 두려움'이었나, '두려움> 설렘'이었나.

시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랐던가.


아니다. 언제나 몽실몽실한 설렘이 마음속에 풍선껌처럼 크게 부풀어있기를 바라지만, 고백하건대 소심한 겁쟁이인  안에서는 무슨 일이든 두려움이 맨 앞에 서고 만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당당히도 맨 앞에 서는 그것이 얄미워 이제는 무언가 시작할 때면 혼자 되뇐다. 아직 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두렵지가 않아. 처음이니까 괜찮지! 지금 하지 않으면 내게 다음은 없어.'




그렇게 용기 내어 시작했던 '브런치북 만들기'.


어김없이 맨 앞에 선 두려움을 저 뒤로 보내고 당돌하게 시작했건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이런 방식으로 힘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 주에 한 편의 글쓰기, 그것과 여전히 격렬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기에 이곳에서 더 허우적거릴 일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해 이곳에서 글을 쓸 수 있는 나의 공간을 얻고 나서는 이곳짙게 배어들고 싶어 무엇이든 써 내려갔다. 자판  꼿꼿하게 서있는 열손가락부터 꽁꽁하게 얼어버린 머릿속까지 두려움을 덜어내고 습관으로 길들이기 위해 매일 들어와 머물렀다. 공통된 주제나 글의 흐름과 같은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마음이 가는 대로 글자의 형태꺼내는 일에 편안해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고 이제야 브런치북을 엮으려고 보니 '작품의 기획의도'부터 '제목', '추천 대상'까지, 분명 내가 쓴 글들인데도 알 수가 없었다.


먼저 우왕좌왕하 써 내려간 나의 글들을 첫 편부터 모두 읽어보아야 할 터였다. 그것이 브런치북의 시작이라는 것을 과연 몰랐다.



내가 쓴 글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는 일, 이것은 내가 브런치북을 만들며 단연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날엔 컴퓨터를 켜는 일이 두려울 만큼. 겨우 복복하게 잠재워둔 우울을 살살 깨워내는 기분이랄까. 버려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내 안으로 다시 꿀꺽 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한동안 속이 좋지 않았다.


50편의 글들을 적어도 50번이 넘게 읽어보았다. 스무 번째 글을 읽을 즈음이면 첫 번째 글의 내용이 아득해지니 그것을 놓쳐버릴까 봐 다시 첫 번째 글로 돌아와 읽으며,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일 돌아가 보듬어 읽어주었다. 그렇게 읽고 나서야 고작 50편밖에 되지 않는 그 글들이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 감겼다.


부족한 글일 테지만 초심자의 열정이 가득 담긴 다시 써 내려가지 못할 글들이기에 고이 엮어주고 싶었다. '공모전'이라는 것 핑계 삼아.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총총히 고르고 모아 순서를 정하고 나면 마디를 나누어 소제목을 정해야 한다. 


난 여기서 모아둔 글의 순서를 몇십 번 바꾸어가며 읽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애초에 문해력이 뛰어나지 않고 결단력마저 부족한 탓에, 이렇게 나열해도 괜찮고 저렇게 놓아도 다르지 않아 보이니, 골라둔 글들이 현기증이 나 쓰러질 때까지 이리저리 옮겼다.


처음으로 '편집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요하게 위대한 일인지 실감했다. 가히 존경스러웠다.



소제목을 안아줄 거대한 제목을 만들어내는 일.


수년동안 법을 고대로 집행하는 일을 나에겐 정확성과 신속함을 요할 뿐 창의력을 부려서는 안 되었고 부려볼 시간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스스로 무언가를 상상하거나 만들어내는 일은 낯설고 어려웠으며 그야말로 모르겠지만 물어볼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소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눈앞이 감실감실거렸고 하나도 고르지 못하고 덮는 날도 여럿이었다. 그러다 브런치북의 표지를 수놓아줄 커다란 제목을 정하던 날엔 좁아터진 마음이 더욱 답답해져 다시금 속이 좋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제목과 그와 어울릴 단어들만 눈에 들어왔고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두었다. 가엽게도 전혀 유용하지 못했지만. 머리카락을 씻어낼 때도 단어들이 쏟아져내리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단어를 골라 잡아내었고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에도 눈빛으로 갈구했다.

'적절한 단어를 구하는 중입니다!'



표지는 어떤가. 


글을 쓰는 이곳은 '글자'들만이 얽히고설키어 만들어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지'라는 글자와는 다른 형태가 있었으니, 핸드폰과 카메라 속에 소록소록 자고 있던 수백 개의 사진들을 꺼내어 월별로 머릿속에 정렬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살폈다.


살펴보는 김에 수도 없이 읽었던 나의 글과 관련된 사진들이 보이면 끼워넣기도 하고 글의 메인사진을 바꿔보기도 했으니, 사진들과 사투를 벌인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지우고 싶었던 기억들과 마주하며 나를 더욱 또렷하게 짚어볼 수 있었고, 그 또한 내겐 아삭아삭한 시간이었다. 잠시 얼굴이 찌푸려지도록 슬픈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싱그러운 이었던 것으로 고 싶다.




온 힘을 다해 두 권의 책을 엮고 나니, 남은 글들이 맘에 쓰이더라. 왜 나는 버렸냐고 슬퍼하는 모양새이기도 하고, 비슷한 글들과 어여쁘게 엮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에 남은 글들은 마음속에 더욱 또랑또랑하게 매달아 두었다. 조금 더 글이 모이면 그땐 지금보다 더 근사하게 따서 엮어주겠다고 달콤하게 속삭여 주었으니, 두 달간의 '브런치북 만들기' 대장정은 참으로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콩당콩당 콩콩콩

그뿐이다:)



우울사직자를 살린 그림글별의 비밀
괜찮은데 괜찮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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