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Dec 28. 2023

좋아하는 일 하려고 이렇게까지 해봤지:D

- 올해의 플렉스 -

"웃지 마라."


지금껏 살아오며 아빠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족들이 내게 누누이 들려주긴 했지만, 유독 말수가 없는 아빠가 내게 용기 내어 했던 말이다.


그리고 이 네 글자는 보기보다 해석이 다소 복잡하므로 신중하게 곱씹어 보아야 한다.




나는 놀란 토끼의 눈처럼 또렷한 원형을 가지고 있다. 시원하게 활짝 트인 긴 눈매를 갖추지 못한 채, 그저 그랗고 동그란 눈. 어렸을 적 사진을 보아도 모두 무언가에 놀란 듯 힘을 잔뜩 주고 치켜뜬 걸 보면, 아마 눈을 뜨는 일이 날 때부터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것 더불어 웃는 형상의 얼굴마저 가지고 있다. 고요가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근원을 알 수 없지만, 울어도 웃는 것으로 보일만큼 강력한 웃는 . 그렇기에 토끼 말고 교활한 여우나 시크한 고양이의 인상을 가져보는 것이 오래도록 소원이었다.


타고난 이 보름달 모양의 토끼눈은  모습을 알지 못하고, 감히 반달눈의 형태미소 지으며 살았다. 그러기 위해선 얼굴 전부를 반으로 구겨야 했을 테니, 웃을 때마다 주름 얼굴을 가득 메웠 모양다. 고로 가지런 곱게 웃는 형상이 아니라, 기이하게 웃는 형태를 띤 얼굴이라고 할까. 


그것을 나만 모르고 살았다.


 나의 얼굴을 마주하며 웃은 적이 없으므로 나의 웃는 모양새를 전혀 알지 못했고, 마주하는 아빠는 그런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경건한 밥상머리 앞에서 웃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고, 내가 웃는 것이 싫어 채근하던 것도 아니었다.


침묵을 고수하던 아빠가 고요하게 내던 그 네 글자가 이토록 심도 있는 나에 대한 염려였다는 걸 그땐 몰랐다.




5년 전, 밤에 가까운 캄캄한 저녁이었다. 병원과 직장의 근무시간이 동일했으므로 병원을 가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외투도 입지 못하 병원도 찾지 못한 채 안경점에라도 들렀던 .


왼쪽 눈꺼풀의 떨림.

그때만 해도 심하지 않았다. 긴 텀을 둔 간헐적인 떨림. 그것은 통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상대가 알아채기 어려우므로 그저 혼자만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먹는 일도 부실했고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지냈던 터라 쉬고 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는 게 뭐가 그랬던지 그런 생각도 스쳐갈 뿐, 넘겼다. 사직 후에는 병원보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다 해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고, 그렇게 그것과 사투를 벌인 지 벌써 5년이 넘어버렸.



올해 들어서는  토끼눈도 단단히 성질이 났던 모양인지, 하루종일 눈꺼풀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젠 간헐적으로 떨리지 않았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계속이었다. 종이에 베인 조그마한 상처가 물에 닿을 때마다 아리듯, 이 조그마한 떨림이 온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더라.


피곤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그림을 그릴 때나 글을 쓸 때면 떨리는 눈 위에 손을 얹고 작업했다. 손의 무게 때문인지, 따스한 온기 때문인지 잦아드는 느낌이었고, 그것이 내가 찾아낸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밤이 되면 눈을 뜨는 조차 어려웠다. 하루종일 눈꺼풀이 달리기를 하고 난 느낌이랄까. 그것달래어 그림을 그리다 보면 슬퍼졌다. 


슬프고 고단한 밤이 지날수록 차즘차즘 지쳐갔다.


지금에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에 감사해달콤한 마음은 점점 흐릿해졌고, 이제야 할 수 있게 된 헛헛함들 또렷해졌. 이유 없는 구실들을 데려와 억지로 끼워 맞추고 는 나를 니, 다시금 자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깊은 어둠의 시간을 막 지나온, 아니 그렇다고 착각하는 우울자 마음속에는 다 꺼뜨리지 못한 우울의 잔화가득했다. 그것들에 '호'하고 숨결을 불어 끔찍했던 우울들살려내고 있는 느낌. 죽은 듯이 살아가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묘책이 필요했고, 그렇게 안검하수 수술을 받았다. 타고난 토끼눈은 안검하수를 가진 내가 눈을 뜨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이었다. 이제는 지쳐버린 눈꺼풀이 그럴 힘마저도 잃어버린 모양이었고.


 없는 스크루지인 나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코로나 시기에 청구하지 못했던 작은 수술들의 서류를 챙겨 보험사로부터 소소한 진단금을 받아, 혼자 씩씩하게 강남까지 이동해 수술을 받았다.


 발로 저벅저벅 걸어 성형외과로 입성하는 기분이란, 여하간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더라.


물론 의료진들은 이 답답한 토끼눈에게 뒤트임과 트임까지 더해 눈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수술을 함께 하길 당부했지만, 겁 많은 토끼눈은 부디 눈만 뜰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스크루지는 딱 거기까지, 그것이 한계였던 것이다.




수술한 지 3개월 차, 여전히 같은 모양의 토끼눈을 가진 스크루지는 후회하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 눈뜨는 일이 이렇게 쉬운 일인지 알았다면 진작에 돈을 벌자마자 다 제쳐두고 이것을 먼저 했지 싶다.


수술  회복기 동안 겨울잠을 자듯 지낼  눈꺼풀의 떨림증상 마법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잠을 버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그것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잠시 가출이라도 했던 것처럼 고요히, 고스란히.



그야말로 '눈꺼풀 진동' 모드의 '수면부족' 알림.

아무리 활랑활랑 뛰며 내게 자분자 알려준대도 아직은 이 알림에 맞춰 잠들 수가 없다. 조금만 그리는 일에 홀린 채 질리도록 그려가다 보면, 내게 찾아오알림에 맞춰 잠들싶은 때도 올 테니. 

그때까지만 알람을 잠시 꺼두기로 맘을 정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친 이 스크루지는 이제 아빠 앞에서 당당히, 활짝 웃어낼 자신이 있다.


그래도 내 얼굴을 보고 "웃지 마라."라고 하신다,

그저 고이 안아드려야지.

내 웃는 얼굴에 마음 아프지 않도록.

얼굴을 깊이 파묻고,

그 아픔 다 가져와 버려야지.






작가의 이전글 스크루지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