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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Nov 30. 2023

스크루지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 -


"우리는 돈 쓰는 거 싫어해."

"우린 좋아하는 게 없어."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끼리 잘 살아."


부모님이 매일같이 하시던 말.

새겨듣지 않았음에도 절로 새겨진 말.


나는 저 짤막한 문장 안에 숨겨둔 단어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해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이해한 덕분에 이번 선물은 위 세 가지 규칙에 완벽하게 위배되었음에도 당신의 보드라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선물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땐 생계에 치여서, 직장을 다닐 때엔 일에 치여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은 더욱 격렬하게 에 치여 선물을 하지 않았다.


'못했다'라는 단어보다는 '않았다'라는 말이 적당하다. 그저 변명이었을 테니. 힘겹더라도 눅진하게 맘을 내었더라면 선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에도 선물을 챙겨본 적 없던 우리에게 '선물'이라는 것은 거창하고 거대한 것이었고, 단어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몇십 년을 살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도 선물을 받는 날이 있더라. 그런 날들이 쌓이고 보니 선물을 하는 방법도, 선물을 대하는 자세도, 선물이라는 것의 의미도 차즘 배워나갈 수 있었다. 그중 돈도 없고 소심함마저 겸비 나에안성맞춤이었던 선물은 돈이 들지 않은 조구마한 것들이었다.


감미로운 말처럼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나에게만 내어주는 이라던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가져과자봉지 속에 숨겨진 작고 기름진 스티커, 내게 전해주고 싶어 찍어 보내는 책의 한 구절.


이러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겨우 보일 정도로 형태가 작은 것이라도 마음속 깊이 남았다. 여러 날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더라.


내가 받은 그 선물들처럼 꼭 그렇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었으면 좋겠고, 보이지 않더라도 이것 안에 담긴 내 소중한 마음도 전해지길 바랐으며, 선물하는 이의 행복감만큼이나 당신도 행복하길 바랐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폐점으로 모든 물건을 삼천 원에 판다기에 둘러보니, 수술 후 상처를 가릴 요량으로 엄마가 찾던 스카프 홀더가 보였다. 주머니에 담아 화장대 아래 커다란 종이백에 넣어둔 것이 시작이었지 싶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준다기에 핸드크림을 사고 보니 향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고, 다 쓰고 새것을 뜯으려다 당신 생각에 종이백에 넣어두었다. 내가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던 책 한 권도. 농사일에 검게 타버린 당신이 유일하게 챙겨 바르는 선크림도 넣어보았다.


그렇게 더금더금 모으는 일이 일 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종이백은 아슬아슬하게 가득해졌다.


당신들을 위해 부러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을 알기에, 야금야금,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수집해 온 선물들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굳이 메모를 써 붙여둔다. 당신이 나를 염려하듯 나 역시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므로 이 별것 아닌 것들에도 구태여 말을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이건 폐점하는 곳에서 천 원주고 산 거야!'

'이건 증정품인데 써보니까 좋더라고요. 한 번 써보세요.'

'이 책 나는 정말 좋았는데 한 번 읽어봐.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곧장 그만두고 나중에 돌려주세요.'


메모까지 마치고 꾸러미 속을 간종그려 집 앞 우체국으로 가서 당신을 위한 선물상자를 보냈다. 소심하고 지독한 스크루지는 더욱 지독한 스크루지 부모님에게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다음엔 메모지에 글자를 더 크게 써야겠군:)



언제나 나는 내가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에만 관심이 있었다. 당신은 과연 받은 적이 있었을까.


이번 선물이 무사히 가닿았으니, 앞으로는 내가 오롯이 당신만의 산타가 되어 일 년 동안 야금야금 다시 수집을 시작해 나갈 것이다.


당신의 취향을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법을 찾았다. 마음을 배달할 준비를 해나가행복감이제서아냈다.




좋아하는 게 없다고 말했지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모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와 함께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고, 함께 팔짱을 끼고 예쁜 카페에 들르는 을 좋아한다. 모르는 척 찍히는 사진도. 사고 싶어 했던 물건을 길거리에서 저렴한 가격에 마주하는 일을 좋아하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밤의 시간, 홈홈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모두 올해 병원 덕분으로 당신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알게 된 일들이다. 해보아야, 겪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껏 삶에 치여 해본 적이 없었기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뿐이다.



다음 달 예정된 병원 방문에 맞추어 당신과의 데이트를 토실토실하게 계획 중이다. 몹시도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 당신의 팔에 나의 오른팔을  끼고 갓 꺼낸 호빵처럼 연기를 내며 격렬하게 기를 나눌 준비를 하고 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즈음 당신과 나누게 될 시간, 그것은 오롯이 당신이 내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내가 마구마구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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