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새해까지, 졸업에서 입학까지. 지난 몇 달간 마음을 전하고 보니, 아껴두었던 편지지와 얄궂은 스티커들이 어느 사이 사라졌다.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말이라면 더욱더 자신이 없으니,마음을 전할 방법으로는 편지가한 마디 정도는 더 적당하다고생각했다.
아이보리색의 빳빳한 재질로 둘러진두툼한 커튼 때문이었을까. 다섯 식구에게 다소 작았던집안, 비좁게 드리우던 그림자의 탓이었을까. 문을 열면 어둠이 몸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언제나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가득했던 집안에선 간혹 압력밥솥이 뱉어내는 요란한 소리나 수저가 그릇을 살살 건드리는 소리만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우린 모두 수다스럽지 못했다. 아니 수다스럽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닫혔던 목구멍이 단번에 소리를 내긴 어려웠다. 목이 칼칼했고 소리는 깊이 잠겨있었다. 타고난 반달눈으로 소리를 내지 않던 나는,아마도 아이들이 심통을 부릴 대상으로 적합했던 모양이었다.
그시작이 '손편지'였고.
키순서대로 순번을 정하고 일 년 내내 같은 아이와 짝이 되어 앉았다. 나와 키도 몸집도 비슷하던 나의 짝꿍은 다른 친구들이 내게 말만 걸어와도 책상을 크게 띄어 앉아 등을 돌리고는 종일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나의 대화상대는 오직 그녀여야만 하는나에게만 보이는 지독한 벌칙.
그녀의 마음을 달랠 유일한 방법은곡진하게편지하는일. 그렇게 언젠가부터는 매일 쓰기 시작했다. 편지지가 없었던 난 공책의 귀퉁이를 오리고 꾸며 편지지로 만들어 썼다.
매일 같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어려웠다. 더욱이 무엇을 미안해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은채 사과를 표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 일 년은 길고 지루했으며, 더욱말을 내지 못했다.
분명 그녀가 시킨 일이아니다. 그저 내가 했던 일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묵직한시간들은 고스란히기억난다.
'난 왜 그랬을까'보다,그저어울리는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어린 내가 보낸 기이한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진저리가 나던 편지 쓰는 일에도초초하게익숙해졌고,특히 답장을바라지 않는 편지를 쓰는 일에 더없이 능란해졌다.
지금도 이름과 생김새가 환하게 기억나는 그녀 덕분으로 오래전부터 길러온 습관, 그것이 편지를 쓰는 일이다. 말로 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내겐 편지를 쓰는 일만으로도 마음이음밀히편안해짐을 알았다. 어쩌면 너를 위로하려 시작했던 그것이 내가 나를 위로해 주는방법이었는지도모르겠고.
그러니 그녀를 미워할 수가없다. 우린 모두 어울리는 방법에 서툴렀을 뿐. 배슬배슬한너와 나의 위로의 접점이 손편지였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능란해진 그 습관은 의식 없이 배어 나왔으니. 소풍, 졸업, 생일 등 각종 이벤트가 있는달엔선물보다도으레 편지지부터 골라두었다.가족들에게 마음이 상한 날이나 역으로 내가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나 싶어 마음이 쓰이는 날이면 아껴두었던 편지지를 꺼냈다.
말로 전하기 어려운 말이나 말로 전할 시간조차 없을 때면 깊은 밤 마음을 담아 적어두었다.
답장을바라지 않고 글자를 모아 마음을 전하는 일. 이것에 익숙해진 아이들도 종종 나와 같은 방법으로 마음을 전해오니,그야말로기대하지 못했던 기쁨.
한때는 편지를 쓰는 일이 그저 '고요한 벌칙'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이제 그것은 내게'축복'일 뿐이다.
서툴렀던 그 시간들도 편지를 쓰며 외로움을 달랬는지도 모를 일이고, 가난에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줄 수 없던 특별한날엔값이 싼 편지지를 사 값을 매길 수 없는마음을 글로 담아 선물하곤 했다. 부모님께 도저히 말로 내어지지 않던 '사직'이라는 나의 결심도 편지로 전했으며, 우리 가족의 이벤트의 기본은 단연코 '편지'이니, '축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밖에.
그러니 혹시 그녀의 마음에 그 시간들이 불편함으로 남아있다면 가감 없이 도려내길. 네게 마지막으로 이렇게조촘조촘 편지했으니, 이제는 그 어룽어룽했던 시절과 감사히 이별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