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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y 08. 2024

불효녀의 어버이날 선물 추천

- 늦었다! -


5월을 앞두고는 깊은 심호흡이 필요하다. 


이것은 불안이나 우울의 더께에 짓눌려 애써 숨을 고르며 달래주던 매일의 심호흡과는 다르다. 일 년 중 하루, 달곰하게 감사한 마음을 모아 전할 수 있는 공식적인 날, 그것을 앞둔 비장함을 덧입은 심호흡이랄까.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본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린이날 선물과 며칠 사이 이어 도래하는 자신의 생일선물마저 꼼꼼히도 일러주니, 마음의 비장함을 필요치 않다.


심약한 지갑만이 비장한 각오가 필요할 뿐.



한때는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나 고심했어.'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긴요해 보이는 것들을 어렵게 준비하곤 했다. 하나 그들에게 그것은 '필요한 물품'이었을 뿐, '원했던 선물'은 아니었던지 환희의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입꼬리 한쪽만 억지로 올라갔던 것을 보면.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 년의 수많은 나날들을 진지하고 진진하게 자신들의 날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그간 어린이날 선물들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까. 


마찬가지로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각고면려한 자신들을 위한 선물, 즉 그들이 고르고 내가 지불해야 하는 그 선물들도 내 마음에는 여간만 맘에 들지 않았다. 하나 해를 거듭하며 실수나 작은 실패를 거듭할수록 선물을 고르는 실력도 금시에 자라나더라.



본인을 위한 것이든, 상대를 위한 것이든, 선물을 고르는 일은 이렇게 연습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지금껏 수십 번의 어버이날을 맞이하며 선물을 해온 나는 과연 아이들만큼이나 선물 고르는 실력이 일취하고 있는가. 


자신 없다. 여전히 쌉싸름한 실패의 맛을 경험할 때도 있고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마무리할 때도 많았다.


그중 그저 그런 맛 말고 만족감의 풍미가 당신의 얼굴에 만연했던 선물 두 가지가 올해도 기어코 머릿속을 하르르 떠다닌다.




사직을 하고 곧 엄마의 생일과 어버이날이 이어졌다. 무엇이 좋을까. 15년의 직장생활 동안 빠지지 않고 선물했음에도 챙겨 왔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무엇을 선물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사직으로 놀라 종일 기운 없이 지내실 것이 눈에 선하니 그 헛헛함달래 드리고 싶었지만, 나 역시 사직 이후 진이 빠져 방 한 구석에서 종일 웅크려 보냈던 터라 기력이 없었다. 우린 모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자신만의 공간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당신은 나를 구실 삼아, 나는 당신을 핑계로 나와야 했으니 그것이 둘만의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엄마와 여행을 했다. 12일.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사는 것이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과연 행복해졌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적막했고 조금 슬펐으며 조금 더 지쳐 보였다. 그럼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우린 모두 운전대를 놓아버린 소심이므로 울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기차표를 예매해 당신에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전주역에서 만났다. 어른들의 취향에도 거스를 것 같지 않고 차가 두려운 뚜벅이에겐 한옥마을이 적당할 것 같아서.

그리고 구석구석 발걸음을 옮겼다.


무척이나 붐볐다. 그리고 그곳의 수많은 사람들과 당신은 같았다. 유명한 식당에 들러 맛있는 을 먹고 근사한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진을 남기는 일. 처음 해보는 그런 보통의 일들을 엄마는 같은 모습으로 몹시도 좋아했다.


소담한 한옥의 방 한 칸에서 꼭 붙어 밤을 보내고는 평소와는 다르게 토스트를 구워 눈부시도록 고요하게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일. 당신 역시 이렇게나 좋아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때 보았던 당신의 싱그러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마주한 적 없는 당신의 빛깔, 찬란하게 행복해 보였다.



장소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이틀일 필요도 없다. 숙박비, 교통비, 식비 등 모든 것을 더해 고향에 한번 방문하는 비용과 재어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돈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마음의 문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에서 세밀하게 시간을 나누며 천천히 함께 추억을 조각하는 일. 가리어진 마음속 공간에서 서로를 꺼내기에 충분했다. 


그 조구마한 편린이 나만큼이나 당신에게 총총하게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첫 번째는 당신과 나의 시간을 단단하게 포갠 짧은 여행이다.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꼬깃꼬깃한 설명서를 정독하던 모습을 제외하고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가족 모두 그랬다. 그렇기에 선물을 고민할 때 책을 떠올렸던 적은 없었다.


"네가 책을 본다니 신기해. 많이 봐둬. 난 이제 책을 볼 수가 없어."

작년 한 해, 병원 때문에 함께 지낼 때면 항상  책장을 살펴보셨고 애정하셨다. 교과서 외에는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셨으니, 무척이나 서름하셨던 모양이다.


눈부터 머리, 귀, 허리를 지나 온몸 끄트머리까지 아프니 어딘가에 앉아서 책 속을 빼곡히 채운 글자들을 읽는 일은 진작에 포기했다고 하셨다. 


마침 내가 그림 그릴 때 듣던 오디오북이 떠올라 당신의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아드렸다. 그러고는 재생 버튼. 그때 한껏 부풀어 올랐던 당신의 가슴께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었겠지. 책을 살 경제적 여유도, 빌려볼 수 있는 공간도, 마음속 여유도 없었다. 이제야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더듬어보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떠올릴 수 있는 것들마저 없는. 그렇기에 책의 세계조차 열어내못했을 터. 


열렬히 작동법을 배우시기에 몇 번이고 함께 연습하고 연습했다.



얼마 전 부모님 댁을 방문한 동생은 부모님의 삶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텔레비전 대신 오디오북을 틀어두신다고 했고, 나 또한 요즈음 조금은 달라진 당신의 마음을 느낀다. 어버이날 즈음이 구독 만료일이기에 확인해 보니, 올해 몇 개월 사이에 완료한 책 목록이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없더라.


이것도 병원이라는 핑계로 당신과 시간을 포개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 선물. 고요하게, 열에 들떠 다시 결제해 두었다.


1년 구독료를 월 단위로 환산하면 8천 원도 채 되지 않지만, 혹여 이것을 아신다면 그마저 듣지 않을 것이므로 단단히, 비밀히 해두어야 한다. 토록 비밀스레 선물는 일은 선물 받는 일만큼이나 쫄깃하게 행복한 일이지.




올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눈물병으로 당신과의 여행은 감히 계획할 수가 없었다. 오디오북은 부모님께 드리는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선물이니, 다시 제자리.

선물을 고민해 봐야지. 


이렇게 다시금 시간에 쫓기고 보니, 본인의 선물을 간절히 정성을 다해 알려주던 아이들에게 새삼 고맙다가 후회가 되기도 해. 나도 너희들에게 간곡히 알려줄걸 그랬어. 내가 원하는 어버이날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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