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할 수 있는 것 = 내가 가장 버리고 싶은 것

- 이해 -

by 린ㅡ

아몬드》

작년에 조그마한 집 앞 도서관에 갔다가 이유 없이 손에 들려왔던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안고왔던 책이었고. 내가 무척 바랐던 것을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언제고 다시 읽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간절히 떨쳐내고 싶을 때.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쓰니?"

많이도 들었다. 내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왔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점점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무척이나 불편한 것이었다.


내게는 조금도 좋을 것이 없는 능력. 지어 스스로는 조절이 불가하고 내 마음대로 버려버릴 수도 없는 능력. 나의 수많은 단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직장에선 많이 힘들었다.

"언제까지 다 듣고 앉아 있을 거야? 그래서 저 사람을 도울 방법이 있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본인도 늘 일에 시달리면서 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

"그러니까 본인이 힘든 거야! 본인을 본인이 힘들게 하는 거라고!"

"그렇게 일하다가는 정신이 돌아버린다. 언젠가"

정말 돌아버리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다 사연이 있었다. 달려와 난리를 피우며 하는 말에도 다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그것들의 많은 부분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때에는 들으면서 그 힘듦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이것저것 더 검토해 보고, 할 수 있는 법적 테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사례들도 찾아보고. 결국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을 잘 수가 없었다. 것이 나란 사람이었다.


그렇게 호소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이었으므로 그 힘듦의 감정들은 내게 고대로 축적되었고, 일 또한 그것들과 같이 축적되었다. 공감능력을 필요치 않는 이 직업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느끼면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의 마음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하지 말자고요. 부모님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나이가 몇입니까?"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에 시달리던 어느 출근길 아침, 버스에서 숨이 가빠지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결국엔 들고 있던 가방과 소지품을 집어던지며 모든 시선을 받고서야 숨을 들이켰. 두려움에 며칠을 참다 달려갔던 마음상담 병원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기분이 좋고 좋지 않고는 의미가 없었다. 약을 좀 달라고 울부짖었다. 어서 어떻게든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절실했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 삶의 마지막 같았던 그 고통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의사의 말처럼 난 왜 그렇게 살았을까 잠시 돌아보았다.



가난을 생각할 겨를도 없던 시절에 자정 넘어 들어와 새벽에 세수만 하고 나가시던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는 서로 말을 건넬 여유가 없었다.


시어머니와 같은 집에 살며 온갖 말로 못할 일들을 겪다, 하필 내 생일날 베란다에서 울며 그 소리와 모습을 감추기 위해 열심히 빨래를 하던 엄마, 그리고 옷장에 단출하니 싸놓은 엄마의 짐이 생각난다. 묻지 못했다. 우리는 그때에도 말을 건넬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동안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가 도망가버릴까 봐.


엄마가 기어와 내 발목을 잡고 의식을 잃어가던 순간 할머니는 이번엔 아들을 임신한 것일 거라고 약을 먹이지 말라며 어린 내게 여러 번 말씀하셨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 아빠 공장 전화번호도 모르던 나는 괴로웠다. 결국 119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도착했고 5초만 늦었어도 사망했을 거라고 전해 들었다.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던 엄마와 간호와 일에 치여 살수 밖에 없었던 아빠, 우린 여전히 말을 걸고 웃어볼 여유가 없었다.



배가 불러 출산하러 가면 책상부터 치운다며 나의 직업을 권유했던 부모님과 나의 합격 후 난생처음으로 보았던 부모님의 행복한 얼굴.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끼신 것 같던 그 행복함을 내가 감히 깨뜨릴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쩌면 그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자 렇게밖에 핑계 대지 못하는, 용기가 조금도 없는 비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공감능력이 좋다고 허울 좋게 포장한 말이었던 듯싶다.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말이 듣고 싶어서, 무언가 좋지 않은 말들을 듣는 게 두려워서 타인의 시선에서 만족할만한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가.


그렇게 그냥 소심한 겁쟁이인 나의 삶을 스스로 예쁘게 포장하여 내어 놓은 말일 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허울 좋은 핑계들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없는 삶이라기보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두고 살아온 삶. 의미 없이 느껴지는 그런 삶을 원망할 순 없다. 그 또한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내었던 시간들이었고, 내가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런 나를 알아내었으니, 결코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진 않을 테다.


그야말로 나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보는 삶,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이해하는 삶을 살아볼 것이다.


그런 삶은 어떤 기분인지 알아내려면 먼저 내 안에 용기부터 짜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널 만날 수 있을까,

부디 내 안에서 마구마구 솟아나주렴, 용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