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악' 말고 '노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 '후회' 따위가 있을 수 없는 이유 -

by 린ㅡ

"좋아요, 좋은데 당신은 이 직업에 어울리지가 않아 보여요. 한 번 보자... 경제학에 호텔경영학도 전공하셨네! 호텔 관련한 서비스업, 그쪽이 훨씬 잘 어울려요. 그러니까..."로 시작된 면접관의 나에 대한 총평은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0분 동안 나를 인터뷰한 두 명의 면접관 중 백발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미소를 머금으며 따스하게 건네주신 말이다. 저렇게 쓴 맛이 나는 말을. 웃으면서. 그러면 나를 탈락시켜야지 왜 난 합격했을까.

이것이 직장으로의 나의 첫 시작이었다.


그리고 15년의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니, 그분의 예측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복직하고 나서 네가 적응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로 시작된 나의 선배의 말도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발악'이라는 단어 덕분이다.

타인의 시선에서도 그렇게까지 느껴졌다면 정말 다 해본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그곳에서 나는 나의 시선에선 '노력'을, 그들의 시선에선 '발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다. 직장이었고 아무것도 몰랐기에 유일하게 괴로움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이 길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는 내 인생 젊은 시절을 스란히 바친 이곳에 애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었고. 젠가는 일이라는 관점을 떠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친절이 친절로 돌아오는 조금 더 나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면접을 위해 만든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그것이 내가 순수했던 그 시절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원하시던 '공무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이 곁들여진 '국세공무원'. 그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돈이나 명예, 즐거움을 찾으려 했다면 절대 이곳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 특히 내가 그곳에서 했던 마지막 노력이 생각난다. 그가 말한 '발악'과 유사하다던 그 '노력'.


아팠던 아이들을 두고 어렵게 복직 결정을 하면서, 또 정말 두려웠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난 나를 조그맣게 위로했다.

'젠 내가 이곳 안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국제조세전문가'였다.


하필이면 영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그곳에서 난 영어가 매우 하고 싶었기에 관련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했고, 매일 하는 전화영어부터 시작했다. 좋아하지만 너무나도 잘하지 못하는 그 '영어'라는 것을 힘들었던 일상의 위안으로 삼았던 듯싶다. 한 번도 취업 등의 목적으로 영어공부를 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것이 어렵기도 하고 이상으로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어학시험 통과 후, 국제조세전문가 과정의 교육을 이수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2주 이상 되는 매 교육과정을 경기도 어느 외딴곳에서 받아야 하므로 그동안의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격렬하게 일해야 했고, 교육 전부터 사전과제가 엄청났다. 교육기간 중엔 집까지 출퇴근이 어려워 근처에 하숙집을 구했고 프레젠테이션에 토론, 각종 시험 등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리고 매일 교육시간 종료 후 당장의 급한 업무처리는 필수. 교육 과정은 이수 후 다음 과정으로 연결되어 1년 동안 당면한 일들과 그 목표를 위해 미친 듯이 살았다. 표현이 거칠어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모든 교육 이수 후, 마지막으로 세종시에 위치한 국세청으로 가서 시험을 본 결과, 합격.


나의 환경에서 힘겹게 얻어낸 결과물이라 합격증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던 그동안의 나의 부재의 시간을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국제조세전문가'의 자격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현실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니 내가 현실을 전혀 몰랐던 게다. 수의 영역이었기에 합격 후 당장에 관련 일에 투입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수의 영역이었기에 공석이 쉽게 나지 않았고 임할 수 있는 인원은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였다.


트라우마 같던 지난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내겐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것이 시급했으나, 육아휴직으로 긴 업무공백이 있고 그로 인해 경력이 떨어지는 나와 같은 사람은 지원요건에서부터 불가였다.


하지만 소심한 겁쟁이인 내가 그땐 무슨 용기가 났던지 완벽한 자격요건 미달에도 지원를 제출했다. 그 요건 미달의 지원서를 얼마나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썼는지 모른다. 사연이 어찌나 구구절절했던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심사관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긴 답장을 받기도 했었지만, 결국 요점은 이 자리에 올 사람이 있다는, 당신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노력과 결과가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노력이 타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내가 하는 노력의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의 노력을 요했던 것일 수도 있을게다. 그래서 나도, 상대방도,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내가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배울 것도 많다. 물론 그 당시 아주 많이 속상했다. 보이지 않는 한계점에 다다른 느낌. 아주 작은 희망마저 모두 사라진 숨 막히게 답답한 느낌.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더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곳에서 나를 찾지 못했을 때, 더 이상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선 정말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의 시작점. 그 마지막 '발악' 같던 '노력'은 지금 내가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자, '사직'이라는 결정에 조금도 후회가 없는 이유이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터무니없어 보이던 그 꿈은 국세공무원으로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록불 신호에 건널목을 건널 때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어르신과 같이 동행하기도 하고, 길에서 길을 잃어 울고 있는 아이의 곁에 서서 엄마가 오실 때까지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며 기다려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소소한 일들이 내가 그토록 찾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욕설과 고성 속에 나의 친절이 감히 상대방에게 소리 내어 전해지지 못했던 그곳. 난 그곳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것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내가 포기해 버릴 만큼 못하는 일을 하나 찾았을 뿐. 다음은 내가 무척이나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차례!


자, 이제 무엇부터 찾아내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