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은 두 다리가 절로 떨리고 어깨도 오그라진 채로 많이 떨렸다. 정말 두려웠다. 그래서 이날의 느낌과 모든 순간들이 내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파트의 가장 고층에 살고 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얼마 되지 않아 60세 정도 되어 보이시는 여자분이 타셨고, 나를 빤히 보시다 말씀하셨다.
"첫 출근이에요?"
"아니요, 육아휴직을 하고 첫 출근이에요."
긴장감을 풀려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얼굴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검은색의 엄청난 정장 차림과 얼마 되지 않는 나의 화장품을 총동원하여 완성한 풀메이크업, 높은 하이힐과 승무원과 비슷한 모양새를 한 잔머리 한가닥 없는 헤어스타일, 긴장한 표정에 누가 보아도 불편해 보이는 첫 출근의 장면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첫 출근의 설렘이 빠져있었던모양이었다.
"가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네? 아니에요. 가기 싫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라고 나는 다시 미소 지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럼 가지 말아요.
차분하고 곱기만 한 그 목소리에 난 순간 너무 놀라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들어본 말.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 지금 이 순간, 모르는 사람에게서 듣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
"나 젊었을 적 보는 것 같아서. 나 봐요. 아직도 이러고 살잖아. 너무 싫었는데 다들 감사히 다니라고, 그만두면 후회할 거라고 떠밀려 다니다 여태껏 이렇게 다니고 있어요. 아이들은 있고 돈은 벌어야 하고 나도 걱정되어 그만두지 못했는데,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돈이 별거였나 싶어서...
그때 그만두지 못하면 평생 못 벗어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하는데 난 지금도 안 괜찮거든.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아! 미안해. 첫날인데. 내가 날 보는 것 같아서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좋은 하루 보내요."
말이 끝나자마자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스르르 열렸고, 내가 먼저 1층에서 내려 닫히는 문 사이로 정중하게 인사드렸다. 사실 눈물이 나서 소리 내어 인사드리지는 못했다. 반달눈으로 끝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시던 그분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슬퍼 보여 나도 참 슬펐다.
그 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 아침 큰 위로가 되었다. 그분의 말을 곱씹느라 불안해하거나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다.
두려움을 안고 갔던 직장에서는 나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상처들과 더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다시 그 일들에 순식간에 파묻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내가 없는 나'로 살아가게 되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 살아갈 수 없는 날들이었다. 나에게는 그랬다. 그 직업이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그 직업에 정말 어울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능력 밖이었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 직업도 나라는 사람을 만나 고생했고, 나도 그 직업을 만나 고생이 많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혹여 다른 사람들의 충고처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거라는 말이 두려운사람들,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은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버리고 주인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그분처럼 출근길에 요정처럼 불쑥 나타나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가지 말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본 사람의 경험으로 들려주는 말에는 그 오랜 세월과 깊은 감정이 실려있었고, 듣는 사람에게는 글자 하나하나에 그 소중한 진심이 가득 담겨 마음 깊이 전해졌다.
내가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할 때 언제나 들었던 말이 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제 사직 3년 차인 나의 대답은,
"그만두지 않았으면 정말 심각하게 후회할 뻔했어."
사실 조금 더 일찍 결심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때가 많다. 조금만 더 내 몸과 마음이 건강했을 때.
하지만 마음이 조그마한 나는 그 오랜 시간을 견뎌내었기에 부모님과 주변 가족들, 특히 내 자신에게 스스로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고,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심한 겁쟁이인 나는 아직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두려움이 모든 일에 있어 첫 번째 장애물이다.
평생 열심히 운영되었던 내 두려움의 공장을 어떻게 당장에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공장도 이제 낡고 낡아 두려움을 만드는데 조금 지친 것 같다. 예전 같지가 않은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