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

Happy accident""

by 린ㅡ

2021.3.2.

소심한 겁쟁이의 인생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그날, 지금껏 살아오며 처음으로 나만 생각하며 가장 큰 용기를 내던 날이다.


이렇게나 오랫동안 자신을 잃고 살았던 사람이 오랫동안 상상만, 아니 상상조차도 겁이 났던 일을 실제로 해보았던 날이니,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용기가 나지 않을 그런 날, 한 번쯤은 이렇게나 근사했던 나를 떠올려 볼 수 있도록.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을까?'


2019년 여름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 숨이 가빠졌다. '너무 더우면 숨이 잘 안 쉬어질 수도 있구나! 올해 여름 참 덥다!' 한여름 빼고는 내복을 입는 나는 그 호흡장애를 아침마다 더위의 탓으로 여겼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이상신호라고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게 어떤 관심도 없었다. 아니 가질 수조차 없었다.


모니터를 보며 일을 하다 갑자기 왼쪽 갈비뼈 안쪽이 급격히 아파오더니, 숨을 들이쉴 수 없어 잠깐 호흡을 멈추었다. 숨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불어내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있었지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불가능했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주 잠깐 지나는 고통이었기에 밀려드는 일에 잊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파도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 사실들을 매번 깊이 인지하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러가버렸다.




5시 반 기상, 감긴 눈을 뜨게 하려고 믹스커피와 가나초콜릿 하나를 다 입에 넣은 다음, 샤워하고 직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 둘이 쪼르르 나와 내 곁에서 다시 잠들었다. 자정 넘어 집에 도착하는 때가 많았으니 유일하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 둘 모두 태어나서부터 극심한 아토피를 겪고 있어 아침에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제를 바르고 충분히 두들겨 흡수시키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이 크림 루틴은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는 중에 시어머니께서 도착하시면 7시에 집을 나섰다. 2년마다 근무지가 바뀌는데, 그때 서울에 살고 있던 나는 파주로 발령이 나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여유롭게 나서야 겨우 제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9시부터 울려대는 전화로 공식적인 근무는 시작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난 6시까지 화장실을 가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6시까지는 나를 온전히 서랍에 넣어두고 기계처럼 일했다. 6시가 되면 전화업무는 마치고 오늘 마쳐야 하는 일들을 시작했다. 빨리 끝내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단순 업무들이 아닌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라 11시 22분에 도착하는 마지막 지하철이 내 자가용이었다.


긴 시간을 보내는 지하철 안에서는 관련 자료들이나 책을 가져가서 살펴봐야 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오면 씻지 못하고 옷을 입은 채로 잠드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깊고 고요한 시간, 아이들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집에 들어가 불을 켜지 않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 그냥 어디든 기대었다. 눈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빨리 잠들고 싶었다.


지우지 못한 화장과 옷을 입은 채로, 울려대는 알람에 눈을 뜨면 5시 반. 옷을 벗고 화장을 지우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다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피부는 상태가 심각해졌고 돌보아주시던 시어머니는 집 앞 마트에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보행에 문제가 생겨 아팠던 아이들을 집 앞 병원에 데려가기조차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난 내가 극심한 고통을 겪기 전엔 몰랐다. 이것이 삶이라고 생각했고,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살기 싫은 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해의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숨을 전혀 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들썩대었고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들고 있던 가방을 내동댕이 치,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나서야 숨이 들어갔다.


숨을 쉴 수 없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게 된 그날 이후,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이 내겐 큰 두려움이 되었고 영화에서 죽는 순간의 모습은 내게 이 순간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불편한 장면이 되었다. 그날부터 온갖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출근길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폭언과 호흡곤란의 순간을 찰나라 여기며 견디어내면서 그냥 렇게 살아내야 했다. 나를 온전히 닫아 숨겨두고 닥치는 대로 15년 넘게 버티어냈던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냥 그게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이었다.

삶을 견뎌내는 방법이었다.




대학 졸업 직전 시험에 합격하고 일 년을 일해본 다음 부모님께 사직을 말씀드리러 고향에 내려갔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함께 슬그머니 이곳은 나와 정말 맞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차가운 말들과 한심스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난 한 번도 부모님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는 첫째 딸이었다. 오랫동안 부모님의 힘들었던 삶을 눈으로, 마음으로 고스란히 느꼈기에 그분들의 말씀을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내가 견디는 편이 나았고 그분들의 판단을 믿었다. 하지만 15년 넘게 일하는 동안 내겐 위험한 일들이 많았고 절망했던 수많은 기억들을 꾹꾹 눌러 담아 다시 말씀드린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같은 반응이었다.


내겐 숨 쉴 공간이 없다고 내 마음에 투정 부리곤 했었는데 정말 숨 쉴 수 없게 되자, 난 모든 걸 버리기로 했다.


난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난 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2021년 3월 2일 화요일 아침.

드디어 사직서를 썼다. 글씨가 엉망이었지만, 이런 건 당초 용납을 못하는 성격의 나였지만, 그날은 괜찮았다. 날씨도 곱게 개이고 있었다. 제일 아끼는 옷으로 차려입고 즐겁게 깡충깡충 뛰어 1시간 반을 걸려 도착했다.


오늘은 꼭 내가 내게 주는 선물 같은 날이니, 아무런 걱정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꿈꾸었던 대로 하루만 해주고 싶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내가 크게 소리도 쳤다. 사무실에 있었던 내 모습처럼 표정을 잃은 직원이 기계처럼 말을 했지만 그저 행복했다. 아직은 그 건물이 불편해서 온몸이 냉동인간처럼 차고 손도 덜덜 떨렸지만, 난 분명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나를 내가 느낄 수 있었다. 웃다가 눈물 흘리는 나를, 이렇게나 행복해하는 나를,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 자유의 맛을 마음속에 깊이 저장했다.



구름을 타고 오는 기분으로 하늘 가득 날아서 집에 돌아오니 어여쁜 축하의 꽃이 도착했다. 감사했다. 언제나 서운한 감정이 들 때마다 이 날의 감사함을 꺼내어본다. 이 날이 오기까지 내 편에 서있던 유일한 사람이기에,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 주는 고마운 사람, 그의 소중한 마음을 난 잊지 못한다.


그날의 달랐던 공기, 처음으로 찍어보았던 하늘, 떨려서 엉망진창이던 글씨, 방안 가득 감사함으로 메운 꽃의 향기,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의 품, 내게 온 자유와 행복이란 감정의 모습들을 난 잊지 못한다.


그날부터 난 달라지고 있다.

그날부터 난 내가 스스로 나를 치유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