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무경력 백수의 현실적인 선택
나는 서른 살 무경력 백수다
이 상태에서 전기공학과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전공이 있다는 건 선택지가 있다는 뜻이지만,
선택지로 인해 생각이 매몰될 수 도 있다.
시작이 늦은 만큼 선택을 가볍게 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다시 시작할 수 있느냐”였다.
고민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전기기사와 전기기능사는
겉으로 보면 같은 전기 분야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경로였다.
전기기사는
전공을 제대로 살린다는 느낌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연봉도, 진로도 더 넓어질 수 있다.
다만 그만큼 공부할 시간과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자격증 하나로 바로 현장에 들어가기에는
현실적인 장벽도 분명했다.
전기기능사는 달랐다.
시험 범위는 상대적으로 명확했고,
합격하면 바로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대신 전공자에게는
‘굳이 여기서부터?’라는 질문이 따라붙는 선택이었다.
나는 지금 빨리 잘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일단 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가장 시급했다.
기사로 가면
→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 그만큼 공백도 늘어난다.
기능사로 가면
→ 빠르게 현장에 들어갈 수 있고
→ 경력을 바로 쌓을 수 있다.
연봉의 최대값보다
공백을 끊는 최소값이 더 중요해진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존심도 흔들렸다.
전기공학과를 나왔는데
기능사부터 시작한다는 선택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이게 내려가는 건 아닐까’
‘괜히 돌아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이건 내려가는 선택이 아니라
다시 들어가는 선택에 가까웠다.
지금의 나는
더 높이 가는 길보다
다시 쌓을 수 있는 입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능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직업훈련소에 들어갔다.
이 선택이 가장 멋진 선택인지,
가장 빠른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이번 선택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지금의 상황,
지금의 나이,
지금의 공백을 모두 놓고 봤을 때
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판단.
그 판단의 결과가
전기기능사였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방향을 알고 들어간 시작이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위해 노력하기보다
내 선택이 최선이 될 수밖에 없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