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무경력 백수입니다.

멈추지 않았는데, 도착하지도 못했다

by 국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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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나는 폐업했다.

그래서 지금, 서른 살 무경력 백수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이 문장이 오해로 소비될까 봐 망설였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복싱 선수로 활동했으며,
해병대 대위로 전역했고,
수제 디저트 가게를 직접 운영했다.


겉으로 보면 “경험이 많은 삶”이다.
그런데 지금의 결과는
무경력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된다.

길.PNG


처음엔 이 단어가 억울했다.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아닌데,
왜 나는 무경력이 되었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문제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멈춘 적이 없었다.
항상 다음을 향해 움직였다.
다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복싱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 아니면 못 해볼 것 같아서”였다.
군에 들어갔을 때는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였다.
자영업을 시작했을 때는
“이번엔 내 선택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각각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순간만 보면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이 선택들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았는데 남은 게 없었고,
도망치진 않았는데 도착하지도 못한 상태가 되었다.


이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왜냐하면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나 스스로를 지켜주는 마지막 방어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열심히 산 것과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래서 지금 나는
서른에 다시 정렬하기로 했다.

늦게 시작하는 만큼 다시 제대로 시작하자고!

이번에는 도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볼 것이다.

밝은길.PNG


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것.


나에게는 선언에 가깝고,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이건 설득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작이니까.


서른에 다시 시작한다.
아직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이번에는 방향부터 생각하며 가보려 한다.


@30agai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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