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내 선택들 (군대)

선택이 모여 내가 됐다 - 두 번째 선택, 해병대 장교

by 국지호

나는 서른 살 무경력 백수다.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지만, 지금의 나는 많이 초라하다.

내가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 자주 이 질문을 한다.
나는 어쩌다 지금의 내가 됐을까?

지금까지 어떤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들은 어떤 결과를 만들었을까?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있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마주하는 선택이 있다.
군대다.


나 역시 처음엔
남들처럼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걸린 ROTC 홍보 플랜카드를 보게 됐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남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이왕 할 거면 남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장교로 가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나는 ROTC를 지원했다.

그 당시 ROTC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영향으로
경쟁률이 6대 1을 넘길 정도로 높았다.


즉흥적으로 지원했고,
큰 기대 없이 시험을 봤다.

그런데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ROTC 후보생이 됐다.


학군단 생활은 꽤 빡셌다.
그만큼 다들 자부심도 강했다.

1학년 겨울방학,
첫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추운 날씨에
장갑을 챙기지 못해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기훈 선배님의 샤우팅이 날아왔다.

“주머니에 손 안 빼?!”

그 순간,
아, 이제 정말 후보생이 됐구나 싶었다.


운동장에서는
임관을 앞둔 4학년 선배들이
그룹을 지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걸 본 3학년 선배가 또 한 번 소리쳤다.

“누가 선배들 훈련하는거 쳐다보래?”

그렇게
무섭고도 낯선 후보생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 7시에 집합해
운동과 교육을 받고 나면
어느새 9시에 가까웠다.


그 시점에
내 동기들 대부분은 군대를 갔고,
나는 복학생들과 함께 전공 수업을 듣게 됐다.




복학생 형들은 달랐다.
군대를 다녀와서인지
수업에 집중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다.


조금만 늦어도
앞자리는 이미 꽉 차 있었고,
교수님들은
“못 들으면 너희만 손해”라는 얼굴로
진도를 나가셨다.


아침 체력훈련을 마치고
헐떡이며 강의실에 도착한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칠판은 앞자리 복학생 형들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고, 졸음은 쏟아졌다.


그렇게
하나둘 전공 수업을 놓치기 시작했다.

공대생이라면 알 것이다.
전공 과목은
각각 따로 노는 과목이 아니다.


하나를 놓치면
그다음 과목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 힘들어진다.

결국 나는
전공 과목에서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스스로를
“전공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론짓게 됐다.




그땐 몰랐지만,

이 시기부터 이미
내 목표와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4학년 여름방학,
나는 무작정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가방 하나 메고
올레길을 걷고,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해병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자기가 몸담았던 곳에 대해
추억과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마침 그 시기가
해병대 장교 모집 기간이었다.

조용하지만 특별해지고 싶었던 나는,
동기들이 대부분 육군을 지원할 때
해병대를 지원했다.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며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돌아보면
나는 어차피 가는 군대,
남들과는 다르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ROTC를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더 특별해 보이는 선택으로
해병대를 택했다.


그 선택 덕분에
나는 많은 경험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처음 전기공학과에 들어왔던 이유,
한전에 취업하고 싶다는 목표에서는
점점 더 멀어졌다.


과연 이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선택은 ‘나쁘다’기보다는
내 목표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는 전기공학과에 진학하며
한전을 목표로 삼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보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
조금 더 특별해 보이는 선택을 했다.


목표는 있었지만
그 목표를 기준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또다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 선택은
현실을 피하기 위한 선택은 아닌지,
지금의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선택인지.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다면,
앞으로의 선택은
조금 더 의식적으로
내 삶을 만들고 싶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선택에 대한 기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지금의 나를 만든 내 선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