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더블린에서 독립생활을 한 지 어언 2년 차였지만 점점 늘어가는 나의 영어 실력과는 달리 내 살림 실력은 영 늘지를 않았다.
일단 내 살림 실력이 꽝인 이유에 나름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아직 학생이었던 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수리. 살림은 지금부터 할 필요 없어. 어차피 나중에 시집가면 알아서 하게 될 텐데 지금부터 고생할 일 뭐 있니?"
우리 엄마는 당신 딸이 약 10년 후에 외국인 남자친구와 동거를 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었을까? 어쨌는 지금 이런 말을 엄마한테 들었다면 '엄마. 큰일 날 소리 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말을 해' 했겠지만, 어렸을 때는 '그래? 그럼 설거지는 엄마한테 패스하자!' 하는 마음으로 방으로 도망치곤 했다.
이런 우리 엄마 덕분에 한국을 떠날 때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전기밥솥에 밥을 짓는 거랑 라면을 끓이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전기밥솥에 밥은 곧잘 하는 편이었는데, 아차차. 더블린의 아파트에서는 전기밥솥도 없었다. 그래서 나의 살림 스펙은 하나가 줄어 겨우 라면을 끓이는 것 정도였다.
그럼 왜 독립한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살림이 한국을 떠난 시점에서 한 발자국도 늘지 않았느냐를 변명해 본다면, 내가이런 면에서 있어서 참 무딘 성격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해외 생활이 체질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게는 한 번씩 온다는 향수병이 없었고,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하지도 않았다. 고향의 맛이 전혀 그립지가 않으니 굳이 먼 아시안 슈퍼마켓까지 가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보자라는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더블린 시티에 있었던 아파트 바로 밑에는 내가 좋아하는 5유로짜리 피자집과 차이니즈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있었고, 슈퍼마켓에 가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근사한 한 끼가 되는 각종 프리 메이드 푸드를 팔기도 해서 나는 그것들로 끼니를 때웠다. 가끔씩 하우스메이트들이 자국 요리를 하면 나는 와인 한 병을 사들고 들어가 슬쩍 끼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청소 같은 경우는 하우스메이트들과 돌아가면서 했는데, 그녀들도 청소에 예민하지 않고 다들 적당히 하는 성격들이어서 내가 청소를 잘한 건지 안 한 건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법을 알았으니 약간의 발전은 있었던 것으로 하자.
S와 같이 살기 시작하니, 그동안의 나의 살림 실력이 그에 비해면 아주 미천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에게 그의 살림 실력은 거의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그때 일주일에 20시간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S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살림은 그의 담당이었다. 이것도 변명을 해보자면 내가 억지로 안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뭐든지 즉시즉시 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는 시간에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그의 셔츠를 다려보기로 했다. 그는 매일 아침 회사에 입고 갈 셔츠를 다리고는 했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서 그의 셔츠를 다려주기란 무리이니 그가 없을 때 미리 다려보고자 했던 것이다. 티셔츠 한 장도 제대로 다려보지 못한 내가 와이셔츠를 다린다니, 이건 뭐 걸음마도 떼기 전에 자전거를 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30분 간의 사투 후 나는 겨우 셔츠 한 장을 다렸다. 그에게는 10분도 안 걸리던 일이 나에게는 30분이나 걸렸던 것이다. 2시간이 훌쩍 넘게 그가 일주일 간 입을 다섯 장의 셔츠를 다리느라 진이 쪽 빠졌던 그날 저녁 나는 그에게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S. 나 너한테 살림을 좀 배워야 할 것 같아."
그는 빵 터져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알았어 수리! 내 비법을 다 전수해 줄게."
"자 봐봐. 세탁은 손세탁과 일반 세탁, 옷의 색깔 그리고 세탁 온도에 따라서 구분해야 돼. 이 옷 안쪽에 30이라고 숫자가 쓰여있지? 그럼 이 옷은 30도에서 세탁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이런 옷들은 너무 더운물에 빨면 옷이 쪼그라들 수도 있어. 손빨래가 필요한 옷들도 옷 안쪽 라벨에 표시가 되어있을 거야. 속옷은 일반 세탁과 구분해서 세탁해야 하고, 아무래도 따뜻한 물로 빠는 게 좋겠지?"
아하. 나는 내 옷들이 페니스*에서 산 싸구려 옷들이라 자꾸 쪼그라드는 건지 알았는데, 이제는 왜 걔네들이 XXS 사이즈로 쪼그라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식기세척기에 넣을 접시들은 음식 찌꺼기가 식기세척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뜨거운 물로 애벌 설거지를 해서 넣어야 돼. 안 그러면 식기세척기 안쪽이 더러워지고 식기세척기 자체를 청소하는데 더 시간이 들 거야."
"잠깐만 S. 네가 방금 설거지한 이 접시는 식기세척기에 굳이 안 들어가도 되겠는데? 이건 애벌 설거지가 아니라 그냥 설거지 아니야?"
나는 그의 꼼꼼하고 깔끔한 설거지 스킬에 감탄했다.
"요리를 하면 인덕션은 즉시 닦아야 해. 그냥 두면 기름때가 끼기 식상이거든. 부엌 타일도 매일 닦아야 해. 즉시 닦는 게 중요해."
안티-박테리아 스프레이와 행주는 그의 베스트 프렌드라는 것을 새삼 다시 실감했다.
"티셔츠는 이렇게 뒤집어서 다리면 프린트에 손상 없이 잘 다릴 수 있어. 목 있는데도 꼼꼼히. 셔츠는 구분을 나눠서 다려 줘야 해. 팔, 목, 그리고 몸통 부분을 이렇게 순서대로 다리면 돼. 속옷도 이렇게 다려주면.."
"워워"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S, 속옷까지 다려 입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나 이제 네가 좀 무서워질라고 해." 몇 개월 뒤 네덜란드에 있는 그의 본가에 방문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우리의 옷가지와 더불어 그의 속옷까지 고이 다려서 방에 넣어주신 것을 보고 나는 그때 했던 말에 아차 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자기는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고 살림을 잘 알아?"
"다 우리 엄마 덕분이지. 엄마가 워낙 깔끔하시기도 했고, 집안일을 도우면 용돈을 주셨거든. 또 우리 형제가 어릴 때부터 여름이 되면 여름캠프니 교환학생이니 보내주셨는데 그때 혼자 사는 법을 많이 익혔어."
"아 그렇구나. 우리 엄마는 살림은 내가 나중에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 평생 내 몫이 될 거라고 어릴 때부터 할 필요 없다고 하셨었거든. 이렇게 독립생활을 할 줄 알았다면 조금씩 배워놓을 걸 그랬어."
"하하. 다 너를 생각하셔서 하진 말이지. 그런데 수리, 우리는 같이 사는 사이이니까 살림은 같이 하면 돼.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시간이 지나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맡아서 하는 살림이 정해졌다. 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은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요리를 즐기는 그는 우리 집의 식사 담당인 경우가 많았고, 그럼 나는 그의 옆에서 즉각 즉각 설거지를 했다.
빨래는 주로 내 담당이었고, 이제는 내가 그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화장실 청소는 그의 몫이었다. 그가 가구의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청소기를 집어 들고 먼지가 털어진 쪽부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그는 또 자연스럽게 걸레를 들고 나와 내가 청소기를 돌린 부분을 대걸레질 했다. 그가 대걸레질을 하면 나는 쓰레기통을 비웠다. 우리는 살림에 있어서 영혼의 파트너가 되었다.
세상의 많은 커플들은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니까' '네가 통근 시간이 더 적게 드니까' '내가 더 힘든 일을 하니까' 등의 이유로 상대에게 살림을 떠넘기려고 한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커플이 아니라 그냥 하우스메이트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이 '더 힘든 일을 한다고'해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 살림을 떠넘길 수 있을까? 그건 정말 비상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S는 그저 '같이 사는 사이니까' 살림은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거 생활의 가장 중요한 상생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협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