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작업일지

by 김화연

김화연


가을 샛바람부터 갈바람까지

바람들은 바쁘다

나무들을 방문하는 바람의 종류들

붉은 이파리들을 골라 떨군다.

갈바람은 모과나무의 조숙한 씨앗을 흙으로 내려보내고

소슬바람은 산사 나뭇잎으로 쓸쓸한 풍경이 된다

샛바람은 모감주 나뭇잎을 술 취한 듯 떠돌고

된바람은 뒤늦은 잎들을 뒤척거리며 달력을 쳐다본다.

온 산을 뒤지다 만나는 침엽수들은

바람의 휴일

바람의 달력에는 공휴일 표시가 온통 초록색이다

붉은색이 많은 단풍나무는 야근한다.

산수유 열매 반짝거림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 오동나무

이파리를 만진다고 도둑 신고를 하는 담쟁이

나무들 민원신고에 바쁘다

산꼭대기부터 슬금슬금 나무들을 작업하는 바람 작업일지에는

소나무 이름은 없다 별을 닮은 단풍과 초승달을 그린 오그라진 발을 닮은 파란 단풍을 보았다는 시의 문장도 간혹 보인다.

모두 북쪽에서 파견된 바람의 기술진들에겐

숙련된 낙화 업무일지가 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나무들 옷을 벗기는 일

일사불란한 늦가을

낙화 일지엔 나무마다 꼭꼭 문 닫아 주었다는

추신이 함께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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