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러셀
아주 오래 전, SAS 같은 통계 처리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주요인 분석> 등등 온갖 이해 못할 수학적 분석을 하고 있을 때,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꼭 번역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있었다. 사실은 논문인데, 책 분량이었으니 책이라도 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정보 이론의 대가인 클로드 섀넌이 쓴 정보 전달 이론 논문이었다.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엔트로피 함수에서 착안한 통계적인 방법을 써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제시한 내용이었다고 기억한다.
물론 필요한 만큼만 읽고 그만두었지만, 공학 논문을 감탄하면서 읽었던 것이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공학은 워낙 발달 속도가 빠르기에, 그 논문도 이제는 러셀의 이 책에서처럼 서문에 한두 줄로 언급되고 넘어가는 역사의 일부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당시에 그런 컴퓨터 통계 분석에 쓰이는 방법들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겠다고, 관련 수학 및 컴퓨터 논문들을 뒤적거리기도 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논문의 저자들도 그런 분석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써놓았다. 나중에 어려운 수학 난제를 누군가가 컴퓨터로 증명했다고 하자, 수학자들이 과연 그 증명이 무슨 의미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는데, 그 뉴스를 접했을 때에도 바로 그 생각이 났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이들이 달려들어 연구를 하고 그 결과 이해도가 높아지지만, 막 새로 출현한 과학기술은 이해 못할 것 투성이다. 인공지능도 그렇다. 사람의 신경망을 모방했다는 그 두뇌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안 좋은 결정을 내릴 때, 나름의 논리에 따라 그런 결정을 내릴 텐데(지금은 논리적, 확률적으로 행동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은 인공지능도 나오지 않을까?) 어느 단계에서 바로잡아야 할지 알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런 일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부품을 하나하나 뜯어서 교체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낼 수 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그럴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단계에 이를 텐데, 그 인공지능이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조차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결과일 수 있다. 인류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저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에 거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일에 매달리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상황도 들려준다. 혹시 인공지능이 초래할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엿보아서일까? 그러니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애초부터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하도록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계가 독자적인 목적을 지니고 그 뛰어난 지능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쓰는 일이 없도록?
인공지능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빠른 발전 덕분에 나날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만큼 이전 지식이 금세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교양서를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관련 인물들의 일화, 발전의 역사, 각 개념의 출현과 진화 과정 등등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책일수록 더 푹 빠지게 된다.
하지만 워낙 빠르게 발전이 이루어지다보니, 섀넌처럼 한두 줄로 넘어가게 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아진다. 안타깝게도 그에 따라 관련 일화와 역사도 사라진다. 그렇게 보면, 인공지능 관련 책에서 여전히 거의 다 일화 한두 편씩은 언급되고 있는 튜링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 분야의 책을 번역할 때 겪는 문제 중 하나는 용어를 어디까지 한글화할 것인가 여부다. 관련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들은 대개 영어 용어를 그대로 쓰는 쪽을 선호하는 듯하다. 머신 러닝, 뉴럴 네트워크 등등. 하지만 일반 독자를 생각해야 하는 번역자의 입장에서는 한글로 쓰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역자도 젊을 때는 한글 용어보다 영어 용어가 더 낫다는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다. 그 편이 이해가 더 잘 된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바로 뇌에 든 지능의 특성이니까. 자신이 본래 쓰는 언어를 쓰지 않으면 뇌는 곧 피곤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어 용어가 많은 책일수록 더 그렇게 되고 그만큼 읽기 힘들어진다. 외국어나 외래어의 홍수 속에서 맥락을 이해하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번역서보다 원서가 더 이해가 잘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착각이다. 들이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말로 번역된 외국 소설책은 대개 서너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반면에 그 소설의 원서는 같은 시간에 기껏해야 수십 쪽밖에 못 읽을 것이다.
대신 이해도는 더 깊을 수 있다. 왜? 술술 넘기는 대신에 모르는 단어나 애매한 문장이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더 신경을 쓰고 들여다볼 테니까. 우리 말이라면? 앞뒤 맥락을 따져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다가 '즈려밟고'라는 단어에 멈춰서 무슨 뜻인지 30분 동안 고심할 사람은 국어학자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더 신경쓰면서 읽게 마련이다. 그래야 이해가 가니까.
자, 이제 비슷한 분량의 영어 소설책 한 권을 서너 시간 안에 다 읽어보자. 한글로 번역된 소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이해가 잘 된다고 말하는 분이라면...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련다. 과학기술을 다룬 교양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