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마크 오코널

by 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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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SF에서 정말 인기 있는 주재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더 그렇다. 종말을 주재로 한 드라마가 넘쳐나서, 이제는 딱히 찾아서 보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대신 종말의 원인은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뀐다. 언뜻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하면, 처음 화성에 운하가 있다는 잘못된 내용이 퍼지면서 화성인이 지구를 침력한다는 소설이 등장했고, 이어서 외계 생명체의 침략 이야기도 흔해졌다. 공룡이 소행성 충돌로 멸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당연히 소행성 충돌 이야기도 나왔다. 지구의 금속핵이 돌면서 지구 자기장을 일으켜서 해로운 태양 복사선으로부터 지구 생물을 지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핵이 굳어서 지구 자기장이 사라진다는 내용도 등장했다. 당연히 지구 중심까지 뚫고 들어가 핵폭탄을 터뜨려 중심핵을 다시 순환시키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그 핵폭탄을 서로를 향해 마구 날려서 멸망을 초래한다는 이야기도 유행한 적이 있다.

바이러스도 워낙 기기묘묘하므로, 다양한 종말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뱀파이어, 좀비, 괴물 등등 인간의 유전자 변형의 산물이 인류 멸망을 초래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유전자 변형의 최고봉은 뭐니뭐니해도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종말 이야기는 예전에 에볼라가 창궐할 때 유행했다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코로나 유행으로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후 변화를 소재로 한 종말 이야기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는데, 매년 여름 최고 기온이 갱신된다는 뉴스를 해마다 접하면서 일상화가 된 탓인지, 요즘은 시의성이 떨어지는 양 느끼는 모양이다. 대신 인공지능과 로봇이 최근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어서 다시금 인기 있는 소재로 부활했다.

그러나 소행성 충돌이나 초신성 폭발을 빼면, 종말이 하루 아침에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에산 감축으로 소행성 관측과 추적 업무가 흐지부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그렇다. 대신 종말은 서서히 알게 모르게, 또는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조금씩 스며들 가능성이 높다. 기후 변화로 세상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가운데, 여름이면 차 유리창을 새까맣게 뒤덮던 곤충이 고속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도 한 마리도 달라붙지 않는 시대를 지나서, 이제 우리를 먹여 살리는 벌이 사라지는 시대로 진입하는 가운데 찾아온다.

그러면 대비를 할 수 있고,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종말을 준비하며, 너희들도 준비하라고 설파하는 이들을 찾아나선 저자의 이야기다. 스스로 성격 탓이라고도 말하긴 하지만, 종말 이야기에 십취한 저자는 점점 우울해지고 강박증에 시달리다 못해, 차라리 종말을 떠드는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심한다. 문제를 피하려고 애쓴들 소용이 없다면 아예 정면으로 맞서자는 태도 전환이다.

당연히 이 종말 준비론자들은 정부도 국제 기구도 믿지 않는다. 그래도 핵폭탄을 쏘아대는 3차 대전을 막은 것이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임에는 분명할 텐데, 신념에 찬 이들에게는 사소한 사례일 테니까 넘어가자.

아무튼 이들은 나와 내 가족의 안전과 목숨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다. 저자는 핵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벙커에 수십 년간 살아갈 식량과 의료시설까지 갖추어 놓았다고 하면서 분양을 하는 부동산업자도 찾아가고, 미국의 갑부들이 세계가 다 불바다가 되어도 끄떡없을 장소라고 여기고 땅을 사놓은 뉴질랜드도 가본다. 당연히 수십 년 전에 세계 종말의 전조를 보여준 체르노빌도 가본다.

이 책의 묘미는 그렇게 찾아가서 직접 만나고 둘러보면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실로 접할 때, 종말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번역하면서 특히 인상에 남은 대목은 프레퍼라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종말 준비론자들이 그리는 종말 세상이 사실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와 비슷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무법 천지에서 가장이 자기 땅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람보처럼 활약하는 세상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적어도 프레퍼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보다. 종말이 찾아와도 서로 힘을 모아 돕고 사는 세상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종말에 대비한다면서 풍수지리상 완벽한 곳을 찾아서 벽 두께 30센티미터의 콘크리트 벙커를 짓고 식량을 쌓고 하는 이들을 그저 괴짜로만 여기던 내게는 좀 충격이었다. 괴짜 같은 행동 뒤에 정말로 심오한 정신 세계가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어떤 희화화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다. 저자는 정말로 진지하면서 심각하게 취재를 한다. 자신이 종말 강박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니까.

아무튼 결국 저자는 그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이 책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누구나 죽듯이, 종말도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태양도 종말을 맞이할 테니까. 다만, 그 시기가 일부에서 강박적으로 걱정하듯이 예상하듯이 빨리 찾아올까? 기후 변화 양상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이미 10여 년 전 <<가이아의 복수>>에서 우리가 기후 변화를 막을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 책을 번역할 때 그가 시점보다는 인류의 의지와 능력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로 종말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처럼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는 지금과는 다른 평형 상태에 놓일 것이고, 그 세계에 인류가 살아갈 공간은 극히 적을 것이라고. 여기서 또 한 가지 인류 심리의 이상한 점이 엿보이는데, 왠지 요즘은 미래가 없는 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종종 등장하지 않나? 여기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명대사 '카르페 디엠'이 떠오르는데, 사실 몇몇 개인들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기후 변화가 초래할 미래를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듯도 하다. 그렇게 보면 프레퍼야말로 어떤 정신 세계에 있든 간에, 진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이런 몽상은 <역자의 말>에 적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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