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스>>

저스틴 길리스, 핼 하비

by 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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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다룬 책을 쓸 때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어떤 현안이든 간에 오래 논의하면 우리는 지치게 마련이다. 익숙해지고 식상해지고 일상적이 되면서 아예 현안에서 탈락하는 것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기후 위기는 좀 독특한데, 그렇게 식상해졌다 싶으면, 에측한 대로 더욱 심해지면서 더위와 폭우와 가뭄과 홍수 등 날씨 가록을 심심찮게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기준점도 옮겨지지만, 기후는 그런 꼴을 못 보겠다는 양 더욱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래도 익숙해졌다고 그 현안을 외면하면서 지구를 달구느라 더욱 힘쓰는 지구인들을 비웃는 듯도 하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규모의 폭풍, 홍수, 산불, 대규모 생물 몰살 등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 동네는 저런 일을 겪을 때 기후 변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하는 궁금증도 인다. 여전히 석탄을 때느라 열심이니까.

이 책은 그 나라에도 그런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 뿐 아니라, 더욱 구체적으로 방안을 찾으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명확히 말한다. 기후 변화 대책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지역 사회, 국가, 세계 차원에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개인의 환경 의식 제고와 실천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들은 지금의 기후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가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개인이 하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책은 아니다. 대규모 집단 차원에서 하는 노력이야말로 진짜 대책이다.

게다가 그 대책은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환경을 거저 먹는 공짜 원료로 취급하지 말라고 아무리 떠들어보았자, 콧방귀도 안 뀌는 이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탼소세든 탄소배출권 거래든 간에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까지 한 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얄팍한 경제 지식으로 평가할 때,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경제성을 갖추게 하는 방식은 거기까지가 한계인 듯 싶기도 하다.

아무튼 저자들은 집단 수준에서 경제성을 갖춘 방안이야말로 진정한 기후 대책이라고 설파한다. 고심 끝에 그들은 7가지 대책을 제시하는데, 대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청정 에너지, 청정 연료, 저탄소 배출 같은 방안들이다.

저자들은 여기에다가 건축 규정과 가전제품 규정 같은 것을 바꾸어서 에너지 절약과 재생 에너지 사용을 기본 사항으로 만들면 도시 자체의 지구 온난화 기여도를 확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전구를 LED 전구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도 나와서, 저 동네는 아직 절전 의식이 덜 되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 열펌프, 즉 히트펌프를 보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왔을 때 좀 의아하기도 했다. 열펌프라니? 예전에 실속이 없어서 쫄딱 망한 기술이 아니던가? 그래서 찾아보니, 내 생각이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술의 발전이란!

다른 글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과학기술은 그래서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곤 한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지식이 어느새 낡은 지식이 되어 있음을 난감하면서 떨떠름한 분위기와 함께 깨닫게 만드니까. 거꾸로 이런 게 번역자의 기쁨이기도 하다.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새삼 알게 되니까. 물론 번역자야 늘 컴퓨터 앞에 붙어 있으니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써먹을 데도 없긴 하다.

이 책에서 접한 또 한 가지 즐거움은 저자들이 지속 가능한 청정 도시로의 전환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예로 든 것이 걷기 편한 도시, 대중 교통 중심의 교통 정책 같은 것들이다. 저자들이 예로 든 사례들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엉? 우리 나라에 안 와봤나?'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더욱 완성된 형태로 펼쳐지고 있으니까. 물론 우리는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딱히 기후 대책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저도 모르게 집단 수준에서 기후 대책에 힘쓰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릴 때면 좀 뿌듯한 느낌도 있다.

그리고 제임스 러브록처럼 기후 위기는 이미 손쓸 지점을 지났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 반면, 이 책의 저자들처럼 아직 안 끝났다고 달려드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면, 가쁜 한편으로 착잡한 마음도 든다. 내 자신이 그런 영웅적인 분들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관자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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