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캔델
당연히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번역하면서 정말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저자들이 있다. 물론 문체나 생각의 흐름이나 주제 같은 것들이 나와 잘 맞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든 말든 간에, 내게는 에릭 캔델이 바로 그런 저자다. 옮기다 보면 내 자신이 번역자가 아니라 그냥 독자인 양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읊자면,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대부분 과학책이긴 하지만, 이따금 소설이나 인문 쪽 책도 옮긴 경험을 토대로 할 때, 인문학 쪽이 글을 더 잘 쓴다고 느껴지긴 한다. 이건 나름 객관적인 평가라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인문학자가 과학자보다 글을 더 잘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주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과학책은 지식의 전달이 주를 이루고, 인문책은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번역을 오래했으니, 이제 전혀 모르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일이 꽤 드물어져서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다.
더 오래 전까지 기억을 헤집어보면, 번역 일을 시작할 무렵에 옮겼던 피터 콘의 <<펄 벅 평전>>이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물론 초창기였고, 당시 과학자들이 얼마나 글을 못 썼는지 피부로 실감하던 터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존 브록만이라는 미국의 저작권 대리인이 2000년대 초쯤에 과학자들의 모임을 주최하면서 직접 글을 써보라고 꼬드기고 설득한 끝에 과학자-저자가 쏟아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그 초창기에 저자로 나선 과학자들이 쓴 글들을 보면, 엉망인 것이 많았다. 문장도 이상하고, 이야기의 앞뒤가 이어지지도 않고, 뭔가 싹둑 달린 듯한 대목도 있고, 자기만 아는 전문 지식을 일반 독자도 다 안다고 여기고 한 줄로 쓱 적고 넘어가기도 하는 등등.
그런 책들을 옮기다가 전기 작가의 글을 번역하니 정말 경이로웠다. 어떻게 이렇게 매끄럽게 술술 이어질 수 있는 거지? 지금 번역한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내 번역 실력이 아주 저열한 수준이었으니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당시 역자가 옮긴 글을 읽은 분들께 눈을 더럽혀서 죄송하다고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잡설이 너무 길었는데,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저자의 여러 글을 모은 것이다. 전시 책자에 수록된 글도 있고, 강연 원고도 있고, 미술과 뇌과학을 연결지어 살펴본 논문 내용도 있다. 에전에 어느 역자의 말에서 저자가 석학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그 생각은 이 책에도 적용된다.
사실 이 책 원고를 처음 보았을 때, 실린 그림들이 저자의 다른 책에서 본 것들이었기에 재수록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저했다. 골치 아픈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전혀 아니었다. 그 점에서 저자의 성실성도 느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의 첫 글은 모더니즘을 탄생시킨 빈 1900의 문화가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왕성한 교류 덕분에 가능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지금의 이스라엘 상황을 보면 좀 분위기를 깨는 듯도 하다. 이 책의 역자 입장으로는 안타깝다. 어떤 책은 시대가 잘 도와주건만. 운이 나쁜 책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저자는 다른 저서 <<통찰의 시대>>에서도 빈 1900의 문화를 상세히 다룬 바 있다. 클림트, 코코슈카, 실레를 탄생시킨 시대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에릭 캔델이 그 개념을 설파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내가 그 내용을 다룬 책들을 번역한 사람이니까. 그런 한편으로 번역가의 고질병이 도진다. '비엔나'가 아니라 '빈'이라고 해야 더 맞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뇌가 우리의 미술 감상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사실 저자가 이전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긴 했지만, 좀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구상 미술과 추상 미술을 볼 때 뇌에 차이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차이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질문을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과학자답게 실험까지 했다. 정말로 차이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직접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역자의 말에도 언급했는데 저자가 제시한 유용한 미술 감상 요령 하나가 내 뇌리에 쏙 박혔다.
추상 미술을 감상하려면 먼저 어려운 철학책을 읽으시라. 뇌가 추상 미술을 감상하기에 더 적합한 상태에 놓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