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츨라프 스밀
난 솔직히 바츨라프 스밀 같은 사람이 부럽다. 이유는 원하는 통계 자료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서다. 어? 이 통계가 없어? 괜찮아, 내가 내면 되지. 칭소년 과학책을 쓰면서, 세계 통계 자료 하나를 찾느라 구글을 뒤질 만큼 다 뒤졌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경험이 떠올라서다.
게다가 통계 자료를 보고 말하라는 저자의 태도도 더욱 마음에 든다. 온갖 영상 광고의 홍수에 빠져 살아가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지. 물론 그런 통계 자료가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온갖 광고판에 시시때때로 떠야 하겠지만. 이걸 바르기만 하면 무좀이 싹 낫는다는 광고 뒤에는 무좀 치료제의 효과를 일리는 식약청 통계 자료를 유명 아이돌의 이미지와 함께 띄워야 한다. 모든 건강식품과 모든 식사요법에도. 그게 국민 건강과 건강보험 건전성에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바로 그런 맥락이다. 세계의 모든 경작지를 유기농으로 바꾸면 세계 인류를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의 건강도 대폭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머지않아 배양육이 실제 가축을 키워서 얻는 고기를 대체할 것이고, 그러면 굳이 소돼지나 닭을 사육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비건 식품으로도 충분히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고 건강까지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저자는 식량과 건강을 둘러싼 이런 다양한 주장들을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하나하나 따진다. 이런 주장들 중에는 기업과 언론과 투자자와 관련 단체 및 개인의 짝짜꿍에 힘업어서 상당히 호응을 얻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주장이 과연 현실과 들어맞을까?
나는 저자가 이 논의를 위해서 인류의 역사부터 살펴본 것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로운 야만'과 '병들고 피폐하고 찌든 농경 사회'라는 최근 들어 유행하는 개념은 과연 타당할까? '구석기 식단'은 정말로 건강에 좋을까? 아니, 정말 구석기 식단이기는 한 걸까?
아동학자 앨리슨 고프닉이 한 말이라고 기억하는데, 지금 유행하는 육아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10년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 마음에 드는 새로운 육아 방식이 등장할 테니까. 건강식 분야에서는 변화가 그보다 더 빠른 듯도 하다. 5년만 기다리면 새로운 식사법이 등장해서 유행하는 듯하다.
제발 식약청 공식 통계 자료도 함께 띄웠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스밀도 인정하듯이 영양 쪽 통계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주로 무엇을 먹었는지 묻는 설문 조사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 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번역한 건강과 식사법을 다룬 책들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스밀이라면 좋은 통계를 낼 수도 있을 듯한데, 워낙 바쁜 분이라서...
아무튼 저자의 결론은 우리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때의 유행과 열풍에 올라타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니까. 다만, 유행 좀 타면 어때, 그래서 잘 되면 좋은 거지 뭐, 하는 심경이 아닐까.
바츨라프 스밀의 책은 이 책을 비롯해서 두 권을 더 번역했다. 한 권은 <<사이즈>>다. 안까깝게도 다른 한 권은 출간되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역자가 번역 원고를 계속 미룬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