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프린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by 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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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책이 걸맞은 대접을 좀 못 받는다는 느낌에 아쉬울 때가 있다. 번역자가 판매 부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 그렇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데, 걸작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음에도 더! 더! 하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랄까.

이 책이 어떻다고 나름 소개하고 싶은데, 막상 추천사를 쓴 정재승 교수의 글을 읽자니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더 잘 써보자는 의욕이 나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없으니까.


리처드 도킨스는 우리가 진화를 통해 물려받는 것에 청사진이라는 말 대신에 요리법이라는 말을 쓰자고 하는데, 동료들의 마음에 썩 와닿는 비유는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청사진, 즉 블루프린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청사진은 이기적 유전자 하면 떠올리는 것과 정반대다. 저자는 우리가 진화를 통해 좋은 사회를 구성하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 청사진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700쪽에 걸쳐서 수많은 사례와 연구를 소개하면서 논의를 이어간다. 좋은 내용이 너무 많이 들어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이 너무 두껍다는 점이 좀 장애물로 작용하는 듯도 하다.

번역자들이 대개 그러한지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다음 책을 번역할 때면 대개 앞서 했던 책의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린다. 책을 다시 읽어야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떠오른다. 때로는 잠시 손을 놓고 다른 책을 하다가 몇 주 뒤에 그 책을 다시 펼치면 어디까지 했는지 잊어먹고 같은 장을 또 번역하는 일도 있긴 하다. 표지를 보지 않으면 내가 번역한 책인지 모를 때도 있다. 독서량이 너무 많아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나름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도 있지만, 지난 책 내용을 물어보는 이에게는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책을 번역하다 보면 '어? 이거 어디서 본 내용 같은데?' 할 때가 있다. 얼마 동안은 번역하다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문득 어떤 그림이 떠오르곤 했다. 사람들의 몸으로 이루어진 왕이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분명 어딘가에서 보았고 내가 번역한 책이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지만, 어떤 책인지는 가물가물했다. 알고 보니 이 책에 실려 있었다.

내친 김에 이 책을 다시 죽 훑어보았더니 내 머릿속에 문득문득 단편적으로 떠오르곤 했던 내용 중에 이 책에 실린 것이 많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만큼 인상에 남을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는 뜻인데, 왜 이 책이라는 것을 까먹곤 할까? 다 저자 탓이다. 너무 길게 써서다.

어쩌면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그다지 기억에 새겨놓지 않는 듯도 하다.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말은 처음에 상식에 반하는 양 느껴저서, 아니 이기적이라는 말이 왠지 거부감이 들어서 뇌리에 깊이 새겨졌을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협력하는 존재이며, 그 성향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말은 사실 신체적으로 허약하기 그지 없는 인류가 협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문명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임을 떠올리면 당연한 양 여겨질 수도 있다. 이기적 유전자가 워낙 강조된 탓에 좀 깊이 아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이기에 더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진화의 궤적이 선함을 향해 휘어져 있다고 낙관하는 저자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안타깝게도 너무 잘 안다고 느끼기에, 독자로서는 그 논거까지 깊이 살펴보려는 의지를 내기가 좀 그런 듯도 하다.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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