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하: 몰아주기(그때 그 시절)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있다.
안 좋은 일은 대부분 겹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방 크게 맞고
털어버리는 게 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연타를 맞고 정신 차리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중엔 트라우마까지 생겨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아직 오지도 않은 다음 문제를 걱정하는 내가 된다.
나 같은 사람의 문제는 한 가지 상황에 얽매이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아예 포기를 해버리던, 해결을 하던 현재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떼 버리지 않는 한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
남들은 잠시 미뤄두기도 잘하더만
다들 대단한 정신력이다.
마음이 불안해버리면 나의 멀티태스킹 능력은
즉시 중단된다.
더 큰 문제는 겉으로 티가 안 나는 것이다.
남들은 내가 다 훌훌 털어버린 줄 알고
요즘말로 도움을 1도 안 준다.
이것도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덮친 격’에 해당하는 두 번째 문제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티를 좀 내고 말로 도움을 청할 생각은 못하고
문제를 가중시켜 오해와 속상함을 쌓아낸다.
외부에서 온 어떤 요인으로 내가 힘들어진 것에
‘ 저들은 왜 몰라주나 ‘ 라며 오해할 타깃을 설정하고
그것은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2차적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안 좋은 일도 겹치지만 좋은 일도 겹친다.
겹경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깔려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또한 바꿔 생각하면
좋은 일은 한 번에 다 터지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썩 좋지 않은 상황 가운데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긍정파워가 넘쳐나는 사람이야
‘그래, 이만하면 괜찮지’라고 생각하거나
‘어떻게 항상 좋을 수 있겠어?’라고 매일을 즐기겠지만 ,극강의 우울함이라는 건 지나가는 개만 쳐다봐도
우울하고 짜증 나고 눈물이 나는 상태라
도무지 긍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겨도 별로 좋지가 않다.
오히려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더욱 우울해지기도 한다. 부정의 과부하다.
어느날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다 같이 청소를 하는데 너무 신이 나는 거다.
사람들이랑 장난치는 것도 재밌고 깨끗해지는 것도
기분 좋고 , 실컷 웃으면서 청소하다가
별안간 구석에 박혀서 눈물을 닦았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고 기분이다.
‘내가 왜 이렇게 신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따가 집에 가면 이만큼 신이 나지 않을 테고
지금 신나는 기분은 한순간일 거라는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신나는 기분이건 슬픈 기분이건 어차피 기분이란 건
한순간인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건강한 생각이 작동되지 않았다.
꽤나 오랜만에 느껴본 즐거움이었던 건지
그 기분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슬펐나 보다.
이렇듯 좋은 시간이었음에도 맺음이 슬펐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기억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슬픔을 잘 닦아내면 그 안에 진짜가 보인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께서
너네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라며
하신 말씀이 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는 도중에
한 여학생이 눈물까지 흘리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길래 도대체 무엇이 그리 웃기는지 물었더니 칠판에 그린
물음표가 웃겨서 웃는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누가 계속 간지럼이라도 태우느냥 웃어 제껴서
그날 수업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워낙에 시크했던 나는 그때 당시에도 ‘별게 다 웃기네’라고 생각했었는데,
풍파를 버텨내면서 훨씬 더 시크해진 지금의 나는
그 여학생이 부럽다.
점하나에 눈물 쏟을 정도로 웃을 수 있는
그 어이없는 감성이 부럽고 ,
남이야 웃든말든 수업이야 하든말든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참지 않음’ 이 부럽다.
40대의 내가 , 60대의 내가 부러워할 또 그리워할
그 무언가를 지금의 나는 가지고 있을 텐데.
좋은 일이 겹친다는 데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태 살아온 세월을 길게 되돌아보면
분명 좋았던 시절이 있을 거다.
특별한 사건이 아닐지라도 ‘그땐 그래도 좋았지’라고 할만한 내 인생의 한 순간 혹은 시절.
가령 지금 불면증을 겪고 있는 당신이라면
책을 펴기만 해도 곯아떨어지던 학창 시절 이라던가,
평생을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며 죽고 싶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면 어찌어찌 살아내서 이 글을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지금이라던가.
없는 것 같아도 머리를 잘 굴려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기억들이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때의 당신은 행복했고,
그 기억 덕분에 지금도 미소 지을 수 있는 당신은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