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by 김지향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

—가브리엘 마르셀


카프카의 『변신』은 사람을 벌레로 만드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벌레가 된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벌레가 되었다.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그의 가족이 그 사실에 너무 빨리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왜 하필 벌레가 되었을까?

벌레는 쓸모가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며, 눈 마주치기조차 불편한 존재다.

즉, 사랑받을 자격을 상실한 인간의 은유다.


그레고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족 안에서 ‘쓸모로 존재하는 인간’

이었다. 아버지의 파산 이후, 가족의 생계뿐 아니라 빚까지도 떠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된 이후, 가족은 절망했지만 그리 오래

슬퍼하진 않았다.

놀랍게도, 이전까지는 잠옷 차림으로 집 안에서 졸기만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제복을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그레고르의 여동생도, 어머니도 경제활동을 시작한다.

그레고르가 열심히 일하던 동안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던

가족이 그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활기차게 자립한다.

게다가 그의 주검 앞에선 신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지난 날의 고통을 잊기 위해 교외로 소풍을 떠난다.


긴 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족 앞에서

처음엔 모두가 안타까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심해지고, 피곤해하고, 자신의 삶을 먼저 챙기게 되는

인간의 본성—

카프카는 이 불편한 진실을 벌레라는 기괴한 설정으로

차갑게 끌어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돌봄은

시간이 길어지면, 감정이 아닌 계산으로 변해간다.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사랑이 ‘쓸모’에 따라 지속되는 관계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부양자에서 가족의 돌봄을 받아야하는 기생자가 된 그레고르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은 누구에게 위로고, 누구에게 굴레다.

가족은 누군가에겐 사랑이고, 누군가에겐 짐이다..


카프카는 묻고 있다.

가족은 사랑의 이름인가, 기능의 이름인가.

가족이란, 끝까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사이인가,

아니면 언제든 교체 가능한 기능인가.


그 질문은 오늘 우리 주변에도 있다.

어떤 가족은 서로를 위로하고,

어떤 가족은 서로를 소비한다.

어떤 가족은 희생을 기억하고,

어떤 가족은 희생을 당연히 여긴다.


당신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가족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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