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오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조언을 남겼다.
어느 직장인이 “회사에서 넉장의 종이에 자신을 표현하라는 과제를 받았은데 어떻게 써야 할까요?”라고 묻자, 하루키는 이렇게 답했다. “넉장의 종이에 자신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세요.”
이 말이 새삼 떠오른 이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단순한기호를 넘어 우리의 성격과 정체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4 남매만 봐도 그렇다.
비빔밥과 비빔국수를 좋아하는 나와 셋째 여동생,
반찬이 골고루 어우러진 한식과 잔치 국수를 예찬하는
남동생과 둘째 여동생.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음식 취향만큼이나 성격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닮아 있다.
사실, 음식이 사람을 설명하는 요소로 활용된 건 소설에서도 흔한 일이다. 미셸 우엘벡(Michel Hourllebecq), 로랑 비네(Laurent Binet) 같은 작가들은 음식을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하루키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늘
샌드위치, 파스타, 달걀 프라이 같은 단순한 음식을 먹는다. 이는 그의 차분하고 소박한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반면, 우엘벡의 <세로토닌>에서는 주인공 플로랑 클로드가 농촌의 치즈와 와인을 먹으며 외로움을 달랜다.
음식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가는 우리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떤 이는 느끼한 음식을 먹으며그리움을 달래고, 또 다른 이는 향이 강한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하루키가 에세이에서 언급한 그의 최애 음식인 굴튀김이나, 오헨리의 단편에 등장하는 생굴 요리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심오하고 정교한 감정을 지닌 음식이 먼 미래에는
‘캡슐‘로 대체될 거라고 예견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지, 어떤
감정을 품고 사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