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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

신경림을 만나다

by 김지향

그날,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던 인사동의 작은 찻집에서 나는 신경림 선생을 만났다. 문인들, 문학 비평가들, 그리고 출판 기획자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풋내기 문학도였던 내게 그

공간은 유독 낯설고도 설레는 곳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한 명의 문학 애호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인 신경림 선생을 마주하는 순간, 그의 시가 나의 삶과 닿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도 오랜 세월 정릉에서 살고 계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치 작은 인연이라도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반갑다 하시며 말씀하셨다.

“정릉…., 거기 참 정겹죠. 나도 오래 살았어요.”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과 국민 시인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학이란 결국 삶에서 피어나는 것이고, 우리가 지나온

거리와 시간 속에 이미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실감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께서는 내게 한 가지 비밀을

들려주셨다.

“길음동을 아세요?”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몇 번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자주 가던 단골 술집이 있었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내 시에 영향을 줬죠.”

그 술집에서의 기억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탄생한 시가

바로 <가난한 사랑의 노래>였다.

그렇게 내게 각별한 시로 남게 되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텼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텨야 한다는 것을. “


시인은 마치 오랜 기억을 되새기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그 울림을 가슴 깊이 새겼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그의 삶이 곧 문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문단의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서민의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시인이었다.

막노동을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 노동자의 땀과 삶의 애환을 가슴에 새기며 시를 써내려 간 이야기.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결국 시로 승화되었다.

그날의 깊은 감동은 내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문학이란 사람을 향하는 것이고,

삶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가장 큰 울림이 된다는 것을.

삶의 바삭거리는 건조함이 느껴질 때 나는 되뇐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어쩌면 인생이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 편의 시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가난한 날에도, 외로운 날에도,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날에도.

그러니 오늘도 묵묵히 살아보련다.

언젠가 내 삶의 한 구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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