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브랜드화하는 법
작품을 번역할 때마다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바로 ‘제목‘이다. 원작의 메시지를 살리면서도 한국 독자에게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을 찾는 일은, 때로
번역만큼이나 오랜 고민을 필요로 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계의 금자탑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도 영국에서 <고래(The Whale)> 로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비슷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모비딕> 개명하여 출판되자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99년, 현대 문학에서 출간한 세르비아 작가 다닐로
키쉬의 소설 <안디의 벨벳 앨범>(원제: 어릴 적 슬픔) 역시 그러한 고민 끝에 탄생했다.
그리고, 도서 출판 푸른 숲에서 출간한 모모 카포르의
소설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의 원제는 주인공 여자
아이의 이름인 ‘싸냐(Sanja)’였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 싸냐’라는 이름이 가진 시대적
감성을 전달할 수 없었으므로 작품의 핵심 정서를 함축하는 방향으로 제목을 재해석했다.
이처럼 책 제목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첫인상’이며,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다.
이 전략은 세계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는 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와는 상당히 다르다.
원제가 철학적인 느낌을 준다면, 한국어 제목은 보다
구체적인 직업적 요소를 강조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전 세계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마크 맨슨의
자기 계발서 <신경 끄기의 기술> 은 원제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에서 강한 비속어를 없애고 보다
대중적인 메시지로 변형했다.
이는 책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더 널리 읽힐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선택의 예이다.
결국, 좋은 네이밍은 단순한 내용 요약이 아니라, 독자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지닌다.
네이밍의 중요성은 출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일에 대한 태도와 만족감이 달라진다.
패트릭 브링리는 동료에게
“왜 경비원이 되기로 했느냐”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독립적이고 부유한 예술 후원가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이 일이 그 꿈과 가장 비슷한 형태야. 나는 하루 종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 속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그 순간, 그는 ‘단순한 경비원‘이 아니라
‘예술 후원가‘가 된다.
어떤 환경미화원은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닦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빛을 띠게 된다.
나 역시 스스로를 단순한 번역가가 아니라
“언어로 세상을 연결하는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네이밍을 한 순간, 내 일은 단순한 번역 작업을 넘어 문화와 언어를 잇는 가교 역할이 된다.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을 던지시라.
“나는 나의 일을 어떻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브랜드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은가?”
‘브랜딩의 힘’을 적극 활용해 보시라.
좋은 네이밍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