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삶을 바꾸는 이상한 방식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문득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장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읽다가 예상치 못한 단어를
발견했을 때, 혹은 카페에서 누군가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는 걸 듣고 있노라면,
나의 언어가 무뎌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모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학술 대회나 포럼 같은 곳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언어의 품격을 갖추기 위한 기회가
많았을 텐데 싶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쉽지가 않다.
아무리 현지어를 배워도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체득하기란 어렵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언어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사고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독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언어는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생각을 확장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용 가능한 언어의 수준이 곧 사고의 깊이를 결정짓고,
사고의 깊이는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레버리지로 작용한다.
요즘 세상은 빠르다.
모든 것이 간결해지고, 언어도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다.
짧고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지면서,
깊이 있는 표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시대일수록 품격 있는 언어가
더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삶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전을 읽는다.
좋은 문장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작은 레버리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