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제발, 선을 넘지 않는 시부모가 됩시다
부모가 되어보니 진정한 효도는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째, 건강입니다. 부연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가족분만실에서 정신없던 순간을 지나 신생아실에서 차분히 아이를 보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까지 나오는 줄도 모른 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고 기도합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무탈하게 보내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부모의 그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성적표를 받아오는 날부터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건강하고 해맑은 아이에게 ”성적이 이게 뭐니? 너 정말 공부 안 할 거야?” 하며 채근합니다. 아이는 신생아실에서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를 우리의 기도대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말이죠. 이건 아이 탓이 아닙니다. 공부 재능을 물려주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며, 부모의 기도를 이루게 해준 하늘에 추궁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모르겠습니다.
“건강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라다오.”
물론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건강하면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그다음엔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겠고, 그다음엔 좋은 직장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아프거나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있는 수많은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요?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처음의 그 마음입니다. 이렇듯 부모에게 최우선적인 위안은 자녀의 건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바로 자녀의 행복입니다. 중요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개념입니다.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게 효도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부모의 뜻대로 사는 게 자식에게도 행복일 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뜻을 거스른 사람은 불효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자신만의 기준일 수도 있지만, 당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 모습이 비록 부모의 기준에 맞지 않거나 부모가 바라는 삶이 아니더라도 ‘행복하다’는 자녀의 말에 부모는 위안이 됩니다. 오히려 부모의 뜻에 따라 억지로 의사, 판사, 변호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부모님과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우울하고 불행한 것보다는 낫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모두가 행복하지 않듯이 부모님의 뜻을 따르다가 자신의 행복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의사가 되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영화배우(할리우드 배우 켄 정)가 된 경우도 있고,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파친코』 이민진 작가)가 되거나 레고 공인 예술가(브릭 아티스트 네이선 사와야)가 된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영화 <세 얼간이>에서 주인공의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경우였죠. 주인공 친구는 부모의 바람으로 최고의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늘 꼴찌였습니다. 그는 사진작가의 열정은 있었지만, 공학도의 열정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모님도 자식이 원하는 삶, 곧 행복한 삶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렇듯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산다면 그것을 마다할 부모가 있을까요?
마지막 세 번째는 함께한 추억입니다.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 합니다. 자녀가 결혼을 통해 공간적, 심리적 이별을 하고 나면 부모는 자녀와 함께한 기억을 추억이라는 필터를 통해 꺼내 봅니다. 추억은 나쁜 기억을 떠올릴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렇듯 어느 순간 꺼내 볼 추억이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합니다. 그러니 가끔은 최신으로 업데이트를 해 드리면 좋습니다. 작년보다는 올해, 올해보다는 지난달에 와서 함께한 기억이 필요합니다. 아버지 생신에 갔던 오리구이집에서 아버지께서 ‘오리가 싫다’고 하셔서 서로 당황스러웠던 기억. 설에 세배하다가 절을 두 번째 하고 있는 저에게 “왜? 세 번 하려고?” 하셔서 두 번째 절을 하다가 그대로 앉아버린 재미난 기억. 오해하면 안 됩니다.이건 자녀의 몫이지, 며느리의 몫이 아닙니다. 며느리는 본인의 부모님과 추억을 쌓으면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셀프효도’입니다. 배우자에게 부담 주지 말고 본인이 직접 부모님께서 평소에 꺼내 보실 추억을 채워드리면 좋습니다. 효도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녀는 빈손으로 와도 추억이 쌓입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맞춰드리는 게 효도가 아닙니다. 만약 그로 인해 생긴 고부갈등으로 악몽과 같은 일들이 기억으로 남겨진다면 그것이 불효입니다. 부모님은 정작 효도가 무엇인지 모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셀프효도하면서 당당한 이유입니다.이런 줄 알면 현재 나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한지 돌아보세요. 그리고 난 후 부모님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세요. 그게 바로 효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