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제발, 선을 넘지 않는 시부모가 됩시다
찍기로 우등생이 될 수 있을까요? 직접 해본 입장(?)에서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찍기로 서울대에 갔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등생이 된다는 건 공부를 해야만 된다는 얘기입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했나요? 그런데 우리는 이 당연한 걸 안 합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인생을 찍기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등생은 찍기로 될 수 없다면서 인생 우등생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나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만 살면 타인과의 불협화음과 각종 문제가 발생합니다. 관계에서 자주 오답을 선택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내 생각대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의 기준이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내 생각이 옳은데 내 생각과 다르면 옳은 것이 아니니 당연히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생각은 다르다기보다 틀린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다행히 그것을 넓은 시야에서 포용하면 좋은 데 그게 안됩니다. 마치 꼴찌가 자기 생각대로 시험을 보고는 채점도 안하고 오답 체크도 안한 채로 문제를 모두 맞췄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꼴입니다.
인생에서도 우등생이 되려면 교과서든 자습서든 인터넷 자료 등 열심히 반복하며 공부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인간관계’에 관해서, 부부간의 문제가 있으면 ‘부부관계’에 관해서, 자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이 문제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 당연한 걸 사람들은 안 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고집이 더 세 집니다. 숫자 중에 10이 완성을 뜻하는 데 사실은 이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개념으로 본다고 합니다. 오늘 나의 바둑 실력이 완성되었다면 내일의 나는 더 새로운 수를 깨닫거나 실력이 늘 수가 없으니까요. 아니, 늘어서는 안됩니다. 완성은 그것으로 끝이니까요. 더 향상되는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공부하면 할수록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닫고 공부하면 할수록 공부할 게 많다는 것도 깨달아서 제대로 공부한다면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생각 또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생각일 수 있다는 사고가 생깁니다. ‘꼰대’는 이런 사고의 폭이 좁고 유연함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떻게보면 고부갈등을 일으키는 시어머니는 가정 내 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생각이 유연하고 예의있는 어른은 좋아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소통은 다름에 대한 열린 사고와 포용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불통의 주범입니다. 요새는 ‘젋은 꼰대‘도 많다고 합니다. 갑질이나 불통은 결국 나이와 상관없이 공부하지 않는 사람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둘 중 한 명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악엔 둘 다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고부갈등을 겪고 있으면서 자신이 평소에 주변인과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원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것은 나이 든 꼰대인 시어머니일 수도 있고 젊은 꼰대인 며느리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관계에서 100% 상대방 과실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에게도 단 몇%의 과실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 나 자신부터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미 일이 꼬일 대로 꼬이고 관계가 틀어지고 나서 깨닫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사람들이 깨닫고 남겨 놓은 지혜를 이삭 줍듯 담아서 지혜의 자루에 담다 보면 경험하기 전에 어리석은 선택을 피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잘 갈고 닦은 마음과 인격이 줍니다. 공부해서 남 안줍니다. 공부는 안전자산입니다.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