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13화] 내 마음은 보물상자

소중한 감정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것들을 위하여”
-크리스틴 루세


가끔 상상하기 위해 먼 곳을 바라본다. 아니, 갑자기 떠오른 상상을 하다보면 멍 때리듯 초점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데 그럴 때 내 입 꼬리가 올라간다. 입 꼬리가 올라간다는 건, 흥미로운 상상을 하거나 어제 본 글귀들이 떠올라 나를 견주어 볼 때다. 내 안에 숨어 꿈틀거리는 장난꾸러기 악동이 번뜩 거릴 때,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린 시절의 개구리 뒷다리 튕겨보는 생각을 할 때다. 또 가끔은 입을 삐죽거리며 오물거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을 더듬어보거나 다시금 그 때 그 상황에서 아쉬운 것들을 되짚어 반성할 때이기도 하다.


‘감정표현’에 대한 말은 자주 들어보지만 생활 속에서 다루기 쉽지 않다. 더구나 나이가 든다는 건 자기 말과 감정, 감정에 뒤따른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영역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잘 표현해야 한다. 여기에서 ‘감정표현의 소중’과 ‘감정표현의 중요’의 선택의 가운데에 우선 가치를 어디에 둘 건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가치가 가치답게 작용할 수도 있고, 가치 이상, 또는 가치 이하로 자기가 내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는 대부분 사회적 통념과 사회적 가치관에도 좌우되기도 하지만 어릴 적 함께 하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기표현의 가치가 정해지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잣대로 표현의 자유를 가늠할 것이냐인데 보통은 그 집안에서 가장 힘이 센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감정표현의 정도가 정해지기도 한다.


우리 집은 엄마가 집안 분위기를 집안의 가훈으로 가졌는데 성실과 근면은 기본이고, 조용하고 모범적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오빠들은 부모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야 했고 그래야 집이 조용하다는 걸 일찍부터 안 듯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오빠들과 달리 내 감정 표현이 자유로웠기에 더 자주 웃고 더 자주 울며 ‘울보공주’로 자랐다. 얌전하고 공부 잘하면서 동네 모범생인, 서로 한 번도(지금까지도) 형제 간 다툼이 없이 지내는 3형제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어깨 뽕이 들어갈 정도였다. 조용한 아들 3형제를 키우다 재잘재잘 떠들고 활달하고 울보인 큰 딸이자 넷째인 내가 엄마는 ‘얌전해야지’, ‘눈물 보이지 말고’, ‘너무 웃지도 말아야 해’, ‘큰 딸처럼 모범을 보여라’, ‘여자답게 행동해라’라며 ‘조용하고 얌전한 큰 딸’의 모습을 강요하셨다. 누구보다 잘 웃고, 남들보다 잘 울고, 같은 여자가 봐도 명랑 쾌활한 나는 여자답지 못하다고, 철없다고 많이 혼났다. 엄마가 기대한 ‘천상여자’의 큰 딸이 아닌 왈가닥에, 밖에서 남자애들을 리드하며 뛰어 놀기 좋아하고, 동생과 다투면 먼저 울어버리는 의젓하지 못하고 감정표현이 다채로운 나를 엄마는 걱정하셨다. 다행스러운 건 걱정을 하시고 잔소리는 하셨지만 자기가 할 일은 미루지 않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함을 칭찬해주셔서 그나마 나답게 살 수 있었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살아왔다.

내 안에는 나를 표현할 줄 아는 마음의 종류가 많다. 보물상자에 담긴 내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보물상자에 있는 내 마음은 별처럼 빛나서 다른 사람의 마음도 빛나게 도와줄 수 있고 용기를 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구름에 가려 빛을 내지 못할 때는 울고 싶어지기고 하고 누군가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기를 바라며 울기도 한다. 눈물을 머금은 진주가 되기도 하고, 활짝 열려 무지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화가 나서 감정이 폭발해 마구 던졌다가 후회하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바로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달콤한 수제 유자청을 내밀면서 따뜻한 손을 내밀기도 한다. 잡아주면 커진 입모양에 환호하는 반응을 하면서 내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살짝 발을 구르기도 하고, 깜짝 선물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하나로 표현된다.

어느 날은 반짝이는 별 같고, 어느 날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같고, 어느 날은 요란한 천둥과 번개 같고, 또 어느 날은 잔잔한 호수에 내리는 빗물 같고, 그리고 어느 날은 강렬한 태양과 은근한 달빛 같은 감정들이다. 이처럼 숨은 감정 표현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조 위테크가 글을 쓰고, 크리스틴 루세가 그린 ⌜내 마음은 보물 상자⌟는 솔직한 감정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귀엽고 발칙하기도 한 감정 표현을 은유적으로 잘 드러냈다. 이 그림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까닭은 그림책에서 마음을 하트로 표현했는데 14가지 색으로, 그리고 하트 마음에 입체적으로 구멍을 뚫었다.


‘오늘은 기분이 별로예요.
마음이 무겁고 슬퍼요.
계속 한숨이 나와요.
마음속에 차가운 얼음이 가득 찬 것 같아요.‘
‘내 마음은 나무 위 오두막집 같아요.
문을 열어놓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오지요.‘

마음이 건강하다는 건 자기 표현에 서둘지 않아야 한다. 소중하기 때문에 잘 다루어야 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내쳐져서도 안 된다. 지금의 감정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 상황에서 맞닿는 감정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고 버리라 강요해서도 안 되고, 다르다고 해서 나쁜 감정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어떠한 감정이라도 자신에게는 있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다.


기쁘면 기쁘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어깨를 내밀어 달라고 부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혼자 버팀의 몫도 필요하지만 절제와 자제, 그리고 표현과 발산도 해야 내 감정의 보물을 잘 지킬 수 있다. 내 감정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타인의 감정과 타인의 표현에 더 잘 공감하게 된다. 감정의 표현이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사용하는 자기감정 사용설명서처럼, 타인에게 공감 받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거나 탓을 하기 전에 자기 몸과 가슴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이 현재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것을 알려주고 싶은지를 스스로 체크하고 표현하는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한 가지 감정으로 몰고 가거나 하나의 잣대로 눌러버리지 않아야 한다. 자기감정 표현을 지나치게 억압해 두게 되면 한꺼번에 화산처럼 분출시키지 않고 그때그때 김이 나는지, 끓어 넘치는 건 아닌지 자기관찰을 해야 한다. 보물상자에 담긴 나의 많은 마음들을 언제 어느 때 꺼내보든, 그 감정의 색과 빛을 온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을 때가 비로소 진정한 자기보물을 지킬 수 있을테니까.


가슴에 멍이 들 때고 있고, 가슴에 환한 풍선을 달 때도 있는 것처럼, 가슴에 들숨과 날숨이 있다. 내 감정의 다양성과 언제든 비워지고 채워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슴에 색을 입히는 것은 내가 할 수도 있고, 타인에 의해 색이 칠해질 수도 있다. 감정은 가슴이다. 가슴이 답답하면 마음이 막히고 숨도 차게 된다. 마음은 언제든 공기가 들어왔다가 머물다가 쉬었다가 내뱉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고 그 자유로움에서 건강해진다.


내 마음은
신비로운 비밀의 정원이 가득한 보물상자예요.
당신의 정원에는 어떤 마음 보물이 있을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책속이야기 14화] 까만 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