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표정’에 ‘살아 숨 쉬는 생동감’, 그리고 ‘톡톡 튀는 매력'과 ‘편안함’, ‘꼼꼼함’. 평소 내게 붙는 이름들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김은정’은 호명되거나 서류를 작성할 때 기입하는 이름이고, 위에 나열한 표현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는지에 따라 달리 붙는 '성격적 이름'이다. 성격적 이름은 내가 만들어내기도, 누군가에게 평가되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이름들은 이렇게 저렇게 나를 옭아매며 나의 생활을 지배한다. 태어난 순간 붙여진 이름과 달리 이 이름들은 성장하며 하나씩, 어느 날은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나 나를 그 굴레 안에서 맴돌게 한다.
나의 성격적 이름은 학년 별로 달리 지어졌다. 초등학교 때 나는 ‘까불이’, ‘왈패’, ‘골목 공주’, ‘활달한 여자애’로 불렸다. 초등학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고 행복했다. 어릴 적 살던 골목에는 여자애들이 몇 없어서, 주로 오빠들 그늘에서 남자애들과 놀았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는 탐구생활과 방학 숙제를 완벽하게 해 가서 책임감을 인정받았다. 5학년 연말 학예회의 조별 장기 자랑에서는 연극 대본을 짜고 배우 겸 감독을 맡았다. 뺑덕 어미 역할을 끝내주게 하는 바람에 졸업할 때까지 '뺑덕 엄마'로 불리기도 했다.
중학교 때 나는 ‘노는 책임 갑’, ‘운동장 껌딱지’, ‘국어 문법왕’으로 불렸다. 춤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1학년 음악과 무용 실기에서 팝송을 선정하고 안무를 짰다. 방과 후 운동장 한 편에서 미친 듯이 춤 연습에 매진했다. 중 3 때는 애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어 문법과 한문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수업 시간을 전세 낸 듯 혼자 잘난척해서 신기한 아이라며 놀림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나는 ‘똘똘이’, ‘쾌활 유아’, ‘별난 여자’로 불렸다. 1학년 1학기, 학년 수련회에서 '사춘기'를 주제로 반 대항 연극을 했을 때 대본을 쓰고 무대를 설치한 것은 물론, 총감독과 배우 자리도 차지했다. 우리 반의 주제는 '탈선하는 아이'였다. 반 대표로 나선 나는 정말 가출 경험이 있는 비행청소년처럼 연극을 해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진짜 '생날라리' 같았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2학기 들어서는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에 방송반에 지원했다. 실기까지 합격해 놓고 정작 활동은 못했지만. 2학년 때는 전국 중고교 웅변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학년 후반에는 국문학과에 손쉽게 직행(?) 하기 위해 모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글을 내기도 했다.
마흔을 넘길 무렵 초·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때 친구들을 졸업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내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길래 거꾸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거 같으냐고 되물었다. 초등 동창 친구들은 뮤지컬 배우나 성우가 되었을 거라고 했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국어교사로 살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학부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했으니, 대학교 때 친구들은 유치원 선생님 하다가 유치원을 하나 꾸렸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당시의 내가 한 행동, 성격을 보고 나의 직업을 추측했다. 상담 심리를 전공해서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독서 치료와 그림책 심리 치유를 한다는 말에, 다들 한 번씩 크게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상담 관련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친구들.
‘친구들 앞에서 보여준 내 모습은 진짜 나였을까?’
이렇듯 학창 시절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고민 없이 즐겁게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의 일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받은 트로피를 들고 집에 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처음 보는 여학생이 "너는 항상 웃고 다니더라. 너도 슬픈 게 있니?"라고 말하며 나를 쳐다보다 지나갔다. 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열세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슬픔'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가던 아이가 몇 달 뒤 중학생이 되는 내게 삶과 인생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 셈이었으나, 그 이후에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았고, 성적이야 떨어지면 부모님께 혼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일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0대와 20대에는 내가 어떤 것으로든 평가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만큼 자신감 넘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딱 30이 되는 시점부터, 세상의 모든 고민과 걱정은 나를 위해 생겨난 듯했다. 서른하고도 두 살 때부터는 모든 평가에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그 이후로는 세상 모든 잣대들, 줄자와 삼각자들이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는 것처럼 느껴졌다. 삼각자는 세모난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떠안은 듯이 조심조심 살아야 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평가로 이어졌고, 작은 숨소리도 내면 안될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세상이 무섭고 시선이 두려웠다. 세상에서 벗어나 사는 방법을, 도피와 회피의 장을 찾아 헤매었다. 이목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남들의 비난이나 비판이 곧 나 자신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다. 부정적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본연의 나로 살기에는 너무 벅찼다.
큰 소리로 웃으면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느냐"라는 말이 들려올 것 같았다. 꾹 참고 기다렸다가 외식 한번 하고 싶어도 누군가 "네가 그럴 상황이냐"라고 할 것만 같았다. 늦잠을 자고 싶을 때면 "네가 늦잠, 낮잠을 자면 10년 뒤에는 어떻게 살 건데?",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아?"하는 말들이 천둥처럼, 번개처럼 날카롭게 울리는 듯했다. 불안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내 목소리를 내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가리고 숨겨야 했다.
하나의 실수는 절망과 낙오를 향한 부정적 사고로 이어져 나를 옭아맸다.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매사에 인생을 걸듯 살피고 또 살폈으며, 일중독으로 걱정과 번민을 극복하려 했다. 나의 허점이 들통나는 게 싫어서 과장되게 나이스 한 태도와 지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겁쟁이로 비치는 게 싫어서 과감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포장했다. 그렇게 점점 나를 잊어갔다. 잃어버린 본모습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약한 존재로 보이는 게 싫어, 새로운 도전도 하지 않은 채 편안하고 진부한 발상 안에 머물렀다. 그 안에만 있으면 실수할 일이 없으니 익숙함의 이름으로 내 그림자를 숨기려 애썼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인정받고, 나를 원하는 곳에서 내가 가진 것을 드러내면 그만이었다. 그게 '까만 토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내 방식이었으니까.
스스로를 나약하고 힘없다고 평가하는 흰토끼가 위험을 피하려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잘 나타낸 그림책이 있다. 필리파 레더스가 쓰고 그린 『까만 토끼』다. 주인공 하얀 토끼를 어디든 쫓아다니며 공포감을 주는 까만 토끼. 이 까만 토끼를 피해 캄캄한 숲에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늑대가 나타난다. 쫓고 쫓기다 숲을 빠져나온 하얀 토끼와 늑대는 다시 나타난 까만 토끼와 마주치고, 까만 토끼의 커다란 덩치에 겁먹은 늑대는 그대로 줄행랑친다. 이 까만 토끼의 정체는 다름 아닌 햇빛 속에 당당히 나타난 하얀 토끼의 그림자다. 자신을 구해준 까만 토끼가 스스로의 그림자임을 알게 된 흰토끼는 까만 토끼의 손을 잡고 총총 풀밭을 달려간다.
세상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던 30대, 40대에는 까만 토끼가 '나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 존재와 타협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고 방어하는 날들이었다. 이제는 안다. 까만 토끼는 숨기고 싶은 나의 일면이었다는 걸. 까만 그림자를 하얀 그림자로, 나의 페르소나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존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삼십 대 중반에 시작한 상담 심리 공부가 까만 그림자를 하얗게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까만 토끼가 지금보다 훨씬 커 보였다. 까만 토끼를 제대로 마주한 날이면 며칠 아파서 힘이 들기도 했으며, 이 아픔에 저항하기 위해 각오를 칼날처럼 다지기도 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 이혼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중년의 이혼 여성들을 만나면서부터 어긋난 단추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온전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고, 타인을 이해하는 매체로서 그림책을 더 가까이하자 나는 차츰 나아졌다.
이제는 안다. 까만 토끼든 하얀 토끼든, 크든 작든, 커지든 작아지든,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더라도 토끼는 내 토끼다. 살아 숨 쉬는 동안 다른 각도에서 나를 지켜주는 나의 힘, 나의 페르소나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직면하고 맞닥뜨려야 힘이 세진다.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진 나의 일면은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수호천사처럼 짜잔 나타날 것이다. 공부나 신앙, 봉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를 지키는 것은 나여야 한다. 스스로 힘을 키우고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피하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바라보아야 한다.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니,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해야만 하얀 페르소나가 우리를 지켜주는 힘이 될 수 있다. 본질은 거울과 같다. 깨거나 부수려 하지 말고 제대로 응시하면서 나란히 가야 한다.
성격적 이름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성격적 이름으로 자신을 평가하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생각과 평가로 만들어지는 성격적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불리고 싶은 성격적 이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강한 본질의 힘인 하얀 페르소나가 나를 지탱해 준다. 하얀 페르소나가 나의 진정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