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은 유치원교사였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해서 천직일거라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일은 별개였다. 차멀미가 심해 먼 길 출퇴근 시간은 나를 지치게 했다. 출근길의 멀미, 바로 이어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셔틀버스 안에서 거꾸로 앉아 아이를 만날 때 마다 임신한 여자처럼 울렁거려 예쁜 아이들을 방긋 대해주질 못했다.
그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입 밖으로 나왔다 삼켰다를 반복했다.부모님과 오빠들은 첫 직장은 무조건 오래 견디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터라 혼 날 게 뻔했다.첫 직장에 대한 부모님의 생각과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힘든 일을 몇 년간 계속한다는 건 내게 무리였다.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차멀미로 고생하는 매일 출퇴근3시간,일주일에 한 번은 차량운행(교사는 거꾸로 앉는다),행사 때 마다 남아서 환경판 꾸미기 등으로 집에 오면9~10시 퇴근이 잦았다.교수님 추천이라 더더욱 내 마음 대로 할 수 없었다.체력적으로 부쳤으나 고민을 털어 놓고 상담할 누군가가 없었다.친구들에게 이야기해도 그 친구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보다 애들과 노는 일이 뭐가 힘이 드냐고 말해서 할 말이 없었다. 혼자 끙끙 앓다가 고민을 그 당신 남자친구(전 남편)에게 말더니 “그리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그게 머리 싸맬 고민이니?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을 들었다.그 때 속이 다 시원했다.몇 달을 고민하던 내가 어쩌면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몰랐다.그만두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몸과 마음이 다시 예전처럼 즐거워졌다.사회생활의 첫 고민의 해결사는 전 남편이었다.
그 이후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은 서른 살 쯤에 결혼을 지속할 것인가 말 건인가에 대한 것이다.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민은 누구와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었겠지만 찾는 것조차, 말하기조차 나를 위협하는 것처럼 두려워 찾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 때 처음으로 내게 오빠들이 아닌 언니가 있었으면 바랐고,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지방 대도시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 때 옆집에 친구가 있기를 바랐다. 또 엄격하고 사회시선에 민감하고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엄마가 아닌, 무엇을 해도 허용되고 여자도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음을 나눌 수 있는 편한 엄마, 친구 같은 엄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이 때는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그 누구도 없을 거라 단정했다.
무엇보다 판단하거나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닌 무조건 나의 아픈 마음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정말 그거 하나면 되었다. 나의 마음과 말과 이야기를 아무런 잣대나 판단이 서지 않는 공감과 경청만이 나를 살리는 거라 생각했기에 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심리상담’, ‘상담’이라는 단어가 20년 전에는 거의 생소하였기에 더욱 문턱이 높았다. 그 때 만약 지금처럼 골목 어딘가에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비밀보장!’이라는 간판이 있었더라면 앞뒤 재지도 않고 있는 힘껏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의 생활과는 사뭇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필요로 할 때 내가 그 누구의 도움을 청하지도 받지도 못해서 지금 내가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나 보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사람들의 ‘마음고충을 듣는 심리상담사’. 내가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마음을 다해 듣는 것은 ‘내 마음도 그렇게 체중을 온전히 실어서 들어주길 바래’라는 싸인을 스스로에게 보내며 다시 마음읽기를 한다. 내가 사는 이유가 곧 네가 사는 이유가 된다는 사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바라는 경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해 재경험을 통해 또 채워진다. 그게 삶이고, 그게 경험이, 그게 바로 나를 살리는 해결사가 된다.
이러한 고민털기와 고민듣기에 대한 그림책, 강경수 글, 그림의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 그림책이 있다. 고민을 털어놓는 숲속의 동물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르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뭔가를 끄적거리는 펭귄 선생님. 뒤에 반전이 있지만 이렇게 반전이 있다는 건 우리들에게 ‘누군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데 자르지 말기’, ‘중단시키지 말기’, ‘자연스럽게 다 말하게 기다리기’ 라는 중간 개입을 철저히 하지 말고 온전히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나의 고민이 다른 사람의 고민이 될 수 있다는 것, 또 반대로 누구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 될 수 있다는 것, 고민을 나누면 슬픔을 나누는 것이고 슬픔을 나누면 기쁨의 자리가 들어오는 자리가 넓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픈 만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힘도 커지고, 타의 아픔을 이해 받으니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커지는 것이 곧 사랑의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 또한 경험을 나누다 보면 나의 고민이 커질 때가 있다. 심리상담사라고 해서 고민이 없을 수는 없다, 내가 제일 조심하는 것이 훈수두지 않기, 남의 말을 내 말로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기다. 말 이면에 조심히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읽어주며 공감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림책을 보면서 무장해제를 통해 자연스런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 스스로 통찰(깨닫게)하게 도와준다.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의 그림자를 읽고, 자기 마음 속 불편한 검은 연기를 입과 코로 고스란히 마시는 게 아니라 굴뚝을 통해 자연스럽게 뺄 수 있는 마음의 해결사가 필요하다. 마음의 해결사는 자신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굴뚝에 연기를 뿜어내는 수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속마음의 불편한 검은 연기를 입 밖으로 거침없이 뿜어대기 전에 안전장치인 내 마음의 굴뚝으로 몽글몽글 해결할 수 있는 자기해결사 연습을 해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