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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Oct 19. 2018

[어른도읽는그림책]⑤ 아나톨의 작은 냄비

당신은 어떤 냄비의 걸림돌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른도읽는그림책⑤ 

Q. 43살의 미혼 남자입니다. 이 나이에 미혼이라고 하니 좀 우습죠? 어쩌다보니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돈 모아서 결혼하겠다고 미루다 보니... 낼 모레면 마흔 중반입니다.

  명절 때 집에 내려가는 게 정말 곤욕입니다. 긴 연휴 안 내려갈 수도 없고, 내려가면 또 ‘장가 언제가느냐, 사귀는 여자는 있느냐, 더 늦게 전게 못가면 총각귀신 된다’, 요즘은 작은 아버지까지 한 술 더 떠서 베트남 색시 소개시켜주겠다고 하시니까 더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뉴스에서 보는 기삿거리에서 제가 주인공이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식사 잘 하다가도 불쑥 ‘장가 언제가냐? 만나는 여자는 있냐? 이러다 손주 못보고 애미는 늙어 죽는다.’하시면서 협박까지 하니까 도저히 집에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내려가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안 내려가도 마음이 편치 않구요.


  장가 못가면 그동안 번 돈으로 혼자 여행다니고 멋지게 살면 된다고 큰소리치지만, 사실 저도 착하고 예쁜 여자 만나 빨리 장가가고 싶습니다. 그런데요,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네요. 일만 죽어라 해서 작은 전셋집은 하나 만들어 놓긴했어요. 키는 165센티 정도 됩니다. 그래서 더 장가를 못하는 것 같아요. 돈은 많지 않은데 키까지 작으니 누가 제게 시집이나 오겠어요? 돈이야 더 일하면서 모으면 된다지만, 작은 키는 늘릴 수도 없어요. 요즘 그렇잖아요. 소개팅 할 때도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이 키가 얼마냐고 묻고, 처음엔 키가 좀 작아도 된다고 하면서도 막상 데이트 할 때는 작은 키가 현실이 됩니다. 현실은 그래요. 아무리 외모 안 따진다 해도.


  어릴 적부터 마르고 작은 키게 놀림도 받았어도 성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어요. 나이들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뭘 해도 자신감도 없고,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또 말라서 더 작아보이니까 남자답지 못한 체격이라는 생각에 힘만 잔뜩 들어가는 헤프닝도 겪고 그래요. 제가 그나마 긍정적인 성격이라 이정도 버텨온건데요, 그래도 여전히 작은 키가 제겐 엄청난 콤플렉스입니다. 더 늦기 전에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이는 낳을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나이 더 들면 결혼하기 더 힘들어질텐데, 점점 더 제가 초라해지고 비참해져요. 콤플렉스 때문에 점점 가족과도 멀어지고 이젠 술마실 친구도 없어지고 힘듭니다.    


A. 남들이 평범하다고 하는 것들에서 조금만 달라도 우리는 이질감을 느끼곤 합니다. 꼭 평범해야할 필요는 없지만 이유를 달면서 말이죠. 

  남들 다 가니까 꼭 가야할 것 같은 대학, 적성과 달라도 마음이 가지 않아도 다녀야할 때가 있구요. 다른 사람보다 감성이 풍부해서 남들 울지 않을 때도, 별 일 아닌데도 눈물 흘리는 자신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거절을 잘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는 분이 계세요. 자신이 위기에 처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자신이 싫다고 매몰찬 사람이 되려하기도 하구요. 

  또 어떤 분은 자기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태어났다며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사시는 분도 계세요. 자신이 태어나면서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많던 재산도 어느 샌가 없어 작은 집에 월세로 살게 되면서 ‘복 없는 년이 태어나 우리 집에 되는 게 없다’며 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발가락이 유난히도 못 생겨서 여름에 샌들을 신지 못하고 다녔어요. 결혼 후 오랫동안이요. 오른발 왼발의 길이가 달라서 신발 치수가 맞는지 확인할 때는 꼭 왼발을 내딛고 신어봐야 될 정도랍니다. 지하철에 앉으면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제 발가락만 보는 것 같아서 샌들을 신었을 때는 자리가 있어도 서서 올 때가 많았어요. 횡단보도 앞에서도 신호등이 바뀌기 전까지 멀리 떨어져 서 있곤 했습니다. 

  여기 ⌜아나톨의 작은 냄비⌟가 있습니다. 아나톨은 평범한 아이예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먼저 다가가 자기의 의사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아픈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꽃을 건네기도 하는 아나톨이거든요. 잘하는 게 많고, 그림도 잘 그리고,  상냥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그저 평범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냄비가 떨어지면 이제는 평범한 아나톨이 아니게 되었어요. 작은 냄비는 아나톨을 귀찮게 합니다. 냄비는 아나톨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예요. 사람들은 아나톨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아나톨이 돌돌돌 끌고 다니는 냄비만 쳐다봐요. 그 냄비는 강아지가 씹어 보기도하고, 웅덩이에 빠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지요. ‘그 냄비’는 친구들과 놀 때도 걸리적거리고, 욕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고, 자꾸 떨쳐 버리려 해도 여전히 졸졸 따라다니면서 여간 귀찮게 하는 게 아니예요. 작은 냄비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 작은 냄비 때문에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나톨은 이제 숨기로 했어요. 아무도 찾지 않는 냄비에 꼭꼭 숨듯, 스스로 안 보고 마음 고생하지 않겠다며 눈을 가리고 지냈어요.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또 있나 봐요. 어디선가 아나톨 보다 조금 작은 냄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아주머니가 등장합니다. 짜잔~. 책에서는 ‘그 사람’이라고 표현을 한 아주머니는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인 지혜를 가르쳐 주네요. 웅덩이를 피하는 방법, 아나톨이 처음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아나톨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는 아나톨이 거추장스럽게 느끼는, 돌돌돌 끌고 다니는 냄비를 넣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 줍니다. 

  아나톨의 냄비는 아직도 작은 달그락 거리지만 이제 잘 보이지 않아요. 가방에 넣고 다녀서 어디에 걸리지도 않고, 화나는 일도 줄었어요. 그림을 잘 그린 아나톨을 칭찬하는 어른들과 재미있게 노는 아나톨.     


  그렇지만 지금의 아나톨은 예전과 똑같은 아나톨이랍니다.    

   세상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콤플렉스를 가지게 됩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말이죠. 작거나 큰 일을 겪으면서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에서부터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 위축되고 소심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콤플렉스란 무엇일까요? 타인이 인정하기 전부터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어딘가에 귀속시키는 것이 콤플렉스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약하거나 강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느끼는 순간, 그 순간부터가 우리는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되고 그 사고는 다시 자기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마음이나 감정까지도 휘둘리게 합니다.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나의 결점이, 나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남들이 볼까 전전긍긍한 적 말이예요. 때론 전전긍긍하던 것이 발각이라도 될 듯싶으면 버럭 화를 내거나 오히려 마치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대응한 적 말입니다. 

  콤플렉스는 상황을 왜곡하여 보게 하며 그 강도에 따라 많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종 생각이나 감정, 또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지만 콤플렉스는 삶의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감은 곧 보상성으로 헤쳐 나가는 극복의 힘을 받기도 하죠.    


  여기, 아나톨의 냄비는 융이 보는 그림자,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보기 보다는 피하고 싶은 자기만의 걸림돌이지만,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보이는 것도 아니고, 숨긴다해도 완전히 숨겨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내 보이는 거죠.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입니다. 처음엔 불편하고 드러내기 힘들지 모르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과 부딪혀 보는 거죠. 담들과 다른 모습을 진심으로 대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 믿어보세요.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지금 당장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바로 여기서 포기하지 마시고, 조그만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요? 당당함으로 맞서며 기다리는 방법도 아나톨이 지혜를 찾고 예전의 그 아나톨로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으로 말입니다.   

                                                                         -어른도읽는그림책(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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