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육아상담 <점>
아이들은 작은 것에 민감합니다. 특히 부모님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릴 정도로 단념도 쉽게 합니다. 내 아이의 장점을 부모가 몰라주면 아이는 위축되어 또래관계도 어렵습니다. 아이의 강정을 발견하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어른이 되어주세요.
오늘은 자신감이 떨어져 얌전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부모님의 격려로 장점을 발휘한 아이를 만나 <점>으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딸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나와 같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영수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1학년인 영수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조금 마른 몸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조용한 아이라 주변 엄마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아이였다. 주변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물건을 망가트리고, 학원에서 애들을 괴롭혔다고 전화로 힘들다고 했다. 반면 영수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고, 색종이나 문구류 한두 가지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아이였다.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영수를 봐라. 그 애처럼 좀 해라.”라고 주문했다. 영수는 말수가 없는 편인데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항상 친구들 사이에 빙 둘러싸여 있었다.
영수가 이웃 엄마들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유치원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을까? 영수는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앞에 나가서 발표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영수가 유치원 생활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영수가 ‘만들기 대장’이었기 때문이다. 만들기만큼은 단연 영수가 최고였다. 영수의 만들기 실력은 학교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색종이 한 가지만 있으면 가위나 풀이 없어도 개구기를 만들어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냈다. 목공풀과 색종이, 가위만 있으면 더 입체적인 것을 만들었다. 미니 컵, 가짜 필통, 휴대폰 가방 등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로 뚝딱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친구들은 필요한 것을 주문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는 영수를 좋아했다.
‘만들기 대장’인 영수가 처음부터 이만큼의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유치원 다닐 적에는 친구들에게 그림 잘 그리는 아이 정도로 인식되었었다. 특히 만화 주인공을 잘 그렸는데, 그 이유만으로 경쟁자인 지호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던 영수가 어느 날 갑자기 미술학원 안 보내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투쟁(?)을 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은데 미술학원을 안 다녀서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학원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영수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신학기까지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인정받아왔다. 누구보다도 자신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자부해왔던 영수였는데 갑자기 3월 초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담임생님이 지호 그림만 칭찬하고 자신의 그림은 칭찬하지 않아 인기가 없어졌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울고 다녔다. 상상력이 뛰어난 그림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영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급기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난 잘하는 게 없어서 친구들이 없다.’ 라고 생각했다.
3월이 지나갈 무렵, 마트 주차장에서 우연히 영수 엄마를 만났다. 신학기 초반에는 영수가 학교에 잘 다녀서 걱정이 없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난 요즘은 학교도 안 가겠다고 하면서 미쇼ᅟ굴학원만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고 했다. 그런 영수 때문에 답답하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단다.
“미술학원 보내면 되지 않아요? 그렇게 보내달라고 하는데.”
“무슨 변덕이 그리 심한지. 일곱 살 때부터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수영도 다니고 태권도도 다니는 애한테 미술학원까지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림을 못 그리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들어가서 배워도 될 것 같아서 학교 들어가면 보내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가겠다는 거예요. 학원 다니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보내준다고 하니 안 가겠다고 하는 건 또 뭔지. 무슨 남자애가 그리 변덕이 심한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떼썼는데 왜 요즘은 안 가겠다고 하는 걸까요?”
“제가 물었죠.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자존심이 상한다나? 유치원 다닐 때 보내줬으면 지호한테 안 졌고 지금도 그림 그리는 걸로 익기 많았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지호가 다니는 미술학원에 반 아이들 절반이 다닌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와서 학원에 다니면 지호 쫓아다니는 꼬봉이라며 싫다고 그러네요.”
“영수 말에 공감 가네요. 경쟁자라고 느끼고 있는 친구를 따라 학원 간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수도 있어요. 그 나이 또래라면 더더욱요.”
“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영 엄마, 아영 엄마라면 어떻게 할지 알 것 같아요.”
“글쎄요…‥. 참, 영수는 그리는 것도 잘하지만 만들기도 잘하지 않았던가요?”
“그야 꼬맹이 시절 이야기죠.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인데 만들기를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영수 엄마! 저한테 잔소리 한번 들어야겠네요. 유치원생이든 초등학교 1학년생이든 만들기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아이잖아요. 그걸로 영수한테 한번 제대로 칭찬해주신 적 있으세요? 영수에게 잘 만들었다고 한 번이라도 눈 마주치고 머리 쓰다듬어 준 적 있으세요?”
“아! 아영이 엄마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았어요. 아영 엄마 말 들으니 창피해지네. 아휴,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도 영수처럼 영수가 못하는 것만 생각했지, 잘하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영수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영수가 엄마 잘못 만나 기죽어 살고 있었어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 곤란해요. 영수 엄마를 야단치려고 한 말이 아닌 거 아시죠? 그래도 영수 엄마가 제 말뜻을 한 번에 알아들었다니 다행이에요. 이제는 영수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다독거려주느냐가 문제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영 엄마라면 좋은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주차장에서 이러지 말고 지금 우리 집에 올라가서 영수 좀 만나줄래요?”
“지금은 제가 시간이 안 돼서 못 가구요, 영수 엄마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점⌟이라는 그림책을 구해 영수에게 읽어주세요. ‘피터 레이놀즈’라는 작가가 쓴 책인데 지금 영수에게나 영수 엄마에게 잘 맞는 그림책일 것 같아요. 나중에 또 만나서 이야기해요.”
⌜점⌟ 피터 H. 레이놀즈(지은이), 김지효(옮긴이), 문학동네
베티는 그림을 못 그려서 미술시간에 그냥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좋으니 그려보라고 했다. 반 친구들은 다 그리고 가고 혼자 남은 베티. 베티는 그림 그리기를 무지 싫어했고,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꾸 선생님이 그리라고 하니까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도화지 가운데 점 하나만 찍었다. 선생님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자! 이제 여기에 네 이름을 쓰렴.” 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일주일 뒤 학교에 간 베티는 놀랬다. 선생님 책상 위에는 금박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베티가 그린 점 그림이 들어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한 베티는 더 자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물감을 사용하여 점으로 그림들을 그렸다. 두 가지 색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도 익혔다. 점점 도화기 크기도 다양해졌고, 색도 다양해졌으며 점의 크기도 달라졌다. 다양한 굵기의 붓을 사용하면서 다채롭게 점을 그렸다.
어느 날 학교 미술 전시회가 열렸다. 베티가 그린 점 그림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전시장에서 한 작은 아이는 자신은 그림을 못 그린다며 베티가 그린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작은 아이는 선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면 베티를 부러워했다. 베티는 작은 후배 아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선을 그려보라고 했다. 아이는 구불구불한 선을 하나 그렸다. 한참을 들여다본 베티가 한 마디했다. “자! 이제 여기에 네 이름을 쓰렴.”
사람마다 특별히 잘하는 게 있기고, 못하는 게 있기도 하다. 잘하게 되는 데는 그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타고난 재능일 수도, 환경이 만들어지거나 받쳐줘서,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잘 되는 경우 등 사유들이 있다.
영수는 만들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것일까? 영수의 말을 들어보면 만들기 솜씨는 환경에 의해 본인이 만들었다. 영수 엄마는 어린 영수가 혼자 노는 것이 안타깝다고, 애답지 않게 얌전한 것이 못내 걱정이라고 했다. 뛰어다니고 물건을 망가뜨리기도 하면서 주위 남자아이처럼 자라길 바라는데, 영수는 자기 방에서 좀체 나오지 않는 데다 거실에 있다 하더라도 옆에 누가 오가는지 상관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아이란다.
그러나 영수의 말은 달랐다. 네 살쯤에 친구랑 피아노 치다가 악보를 올려놓는다는 것이 실수로 옆에 있던 꽃병을 깨뜨린 일이 있었다. 엄마는 다쳤냐고 물기보다는 새로 산 화분이 귀한 것이었는데 망가졌다며 야단을 쳤다. 조심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고, 엄마의 중요한 것을 망가뜨려 죄책감이 들었다. 그 뒤부터 영수는 피아노도 치지 않았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는 영수가 혼자 조용히 놀고 있으면 칭찬을 해주었다. 게다가 엄마 친구들도 볼 때마다 ‘영수는 조용한 아이,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라 부르며 칭찬하고 좋아했다. 영수는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알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의 뼈는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늘고 여리고 말랑말랑하다는 것을. 여기서 말랑하다는 말은 아직 아이의 모든 것이 구조화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고 어느 때고 부모의 어떤 노력에 아이가 단단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궁금하다.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유전인자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나는 환경적인 변화만 주어도 아이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변화를 직접 경험하거나 체험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더 실감한다. 상담하면서 변화된 엄마와 아이들을 볼 때도 많은데 물론, 이 모든 것이 상담으로 인한 변화라고 단정짓기는 위험하다. 그러나 상담을 받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 관련된 노력들을 하는 아이와 부모를 보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그 도움을 받고 인내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다면 충분히 변화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책은 아주 간단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잘했다, 못했다의 결과론적 판단에 앞서 아이의 숨은 노력을 일부라도 제대로 보고 칭찬한다면 큰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의 작은 인정, 한 번의 인정을 받고 싶은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 한 번의 인정과 칭찬은 아이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숨은 잠재력을 발견했다면 그다음에는 격려와 지지, 끝없는 인내로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부모님이 주는 영양분을 먹고 가지를 쭉쭉 뻗으며 자랄 것이다. 어떤 과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과일에 벌레가 생길 수도 있고, 갑자기 태풍이 불어 가지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일일이 쫓아다니며 가지치기를 해주거나 부목을 대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옆에 꿋꿋하게 지켜봐 주며 아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변하고 변해서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고 행복해질 것들을 찾는다. 그 행복은 또 다른 행복으로 이어져 다른 나무에, 다른 꽃에 물과 양분이 된다. 작은 아우성 같은 것들은 어쩌면 아이들이 듣고 싶은 작은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우성을 듣게 하고, 더 자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이들의 발달 속도는 각기 다르지만, 발달 싸인을 살피고 그 반응에 민첩하게 반응하면서 아이가 잡고 있는 방향키를 제대로 점검하길 바란다. 다른 아이는 다 하는데 내 아이만 못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것을 아이 앞에서 말로 드러내면 아이는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노력도 않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그 부정적 인정은 태어나 말랑했던 아이의 잠재력을 굳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그만한 나이에 그만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놓자. 그리고 그 범주 안에서 멋진 칭찬과 긍정적인 대화를 해나간다면 우리는 좋은 부모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점⌟ 그림책을 읽은 영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날 교문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영수 엄마를 만났다. 한결 걱정이 줄어든 표정이었다. 영수 엄마는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재활용으로 버릴 것이 없어요. 작은 종이나 상자들, 플라스틱 병까지도 영수 허락을 받아서 버려야 한다니까요. 만들기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학원 갔다 오면 ‘만들기 대장’으로 변해서 뚝딱뚝딱 만들어내거든요. 친구들과 사이가 더 좋아진 건 물론이고, 자신이 잘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영수의 짜증도 많이 줄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