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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pr 07. 2022

잔소리도 힘들어요

그림책 육아상담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과정을 관찰하는냐, 결과를 주목하느냐에 따라 내 아이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또 매일 듣는 언어는 듣는 말처럼 그 사람을 만드는 일상이 됩니다. 아이의 변화를 바란다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부정적 언어보다는 긍정적 언어로 다가가 주세요. 누군가와 비교하면 아이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줍니다. 과정을 지켜보고 비교아닌 관심과 칭찬, 그리고 사랑을 표현해주세요.


오늘은 친구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두 형제들의 산만함에 지친 엄마를 만나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친구 같은 엄마’.

말로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 역시 항상 바라는 것이 바로 ‘친구 같은 엄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예전에 인기 있었던 커피 광고 중에 ‘친구 같은 아내’라는 광고 글이 있었다. 그 광고 이후, 그 시대 남성들이 바라는 여인상, 주부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친구 같은 아내가 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아이의 엄마가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더 바라게 되는걸까?(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떤 엄마로 불리고 싶은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고 아이들의 마음을 친구처럼 이해해주는, 그런 친구 같은 엄마로 불리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또는 지혜롭고 현명한 ‘신사임당 같은 엄마’로 불리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바람들이 마음먹은 대로 되고 있는지, 약속처럼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 뜻대로 되고 있다면 그건 그만큼의 노력을 했다는 것이고, 엄마로서의 중립적 태도와 아이의 친구로서 다가가는 벗의 태도까지 갖추어야 해서 쉽지 않다.     


부모의 뜻과 아이의 뜻이 통할 때는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경우 종종 부모교육에서 좋은 샘플이 된다. ‘나는 왜 이 엄마처럼 아이들을 못 키우는 걸까?, 이 엄마는 어떻게 했기에 아이를 잘 자라게 한 거지?’ 등 자녀를 잘 키워보려 여러 방면으로 애쓰는 부모들을 본다.


어떻게 하면 공부도 잘하고 재능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친구 같은 엄마’와 ‘키우고 싶은 아이’는 어찌 보면 상반된 엄마의 모습이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걸까?‘ 아니면 한 가지라도 제대로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에 사무실에서 딸아이와 통화를 하는데, 새로 오신 선생님 내 딸 나이를 물었다. 그 당시 열 살이었기에 ’열 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어머, 전 네 살이나 다섯 살 아이랑 통화하는 줄 알았어요.”란다. 나는 이전에도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린 아리, 착한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표준 말투를 사용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잘 대하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바빠서 정신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꽁무니 쫓아다니면서 이거 줘, 저거 줘할 때는 정말 밉다. 상담시간 임박해서 자료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해서 “오늘 머리 아픈데 학원 안 가면 안 돼?”, “문제집 어디 있는지 몰라서 공부 안 했어. 저녁에 와서 혼내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바로 “안 돼!”라고 거칠게 말하고는 씩씩거릴 때도 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언제 화가 날까?

아마 자녀를 키워본 부모라면 모두 알 것이다. 단것 먹고 양치하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 때, 아침마다 깨우는 게 힘들고, 깨워놓고 보면 학교에 지각할 때, 매일 해야 하는 학습지 밀렸을 때, 밥을 세월아 네월아 하고 먹을 때, 심부름 보냈는데 함흥차사일 때,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밥 먹으라는 소리도 못 들을 때, 닌텐도와 게임기로 형제끼리 심하게 다툴 때,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집이 폭탄 맞은 것처럼 난리일 때, 여자 애들 괴롭혀서 학부모들한테 항의 전화 받았다며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올 때, 학폭위가 열렸을 때, 학원에서 사고 쳤을 때 등,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림책 육아상담 <잔소리도 힘들어요>

이럴 때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생각해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노는 아이 보면 부모님이 하고 싶은 말을 다다다 내뱉지는 않았는지, 어떤 이유로 잠을 설쳤는지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진 않았는지,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겠다고 각오아닌 각오를 하면서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적은 없었는지, 아이와 놀아주겠다고 하면서 지치고 힘들다며 컴퓨터 게임할 시간을 늘려준다든지, 휴대폰에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주진 않았는지.


주변에서 이런 말 하는 걸 곧잘 듣는다. “우리 애는 부족한 거 없이 키웠는데 왜 그리 삐딱한지 몰라요.”, “우리 작은애는 큰 애랑 달라도 너무 달라요. 큰애는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데 이 애는 쫓아다니며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요!”, “내가 못 살아. 네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지네들 잘 키우려고 하는 건데 이러다 제가 병이 난다니까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상담하면서 아이들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고 행동했다. 급기야 엉뚱한 방향으로까지 나아갔다. 아이들 잘 키우겠다고 하는 어른들의 노력, 봉사, 희생 등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누가 그렇게 해 달랬어?”, “부모라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 걸 해놓고서 어른들이 생색이야?”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반면 “조금 덜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귀찮아요.”, “그냥 평범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초등학생 애 대하듯 졸졸 쫓아다녀요.”,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 마음으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아이들은 다른 말을 하는 걸 알 수 있다. 위에서 한 말들은 아이들이 겉으로 내뱉은 말일 뿐이다. 그냥 세게 보이고 싶은 청소년의 마음이랄까? 동물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몸집을 부풀리거나 과장되게 모양을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쎄게 해야 부모들이 자신을 덜 힘들게 할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잉렇게 말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다음에 소개하는 그림책을 읽어보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존 버닝햄(지은이), 조세현(옮긴이), 비룡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간단하면서도 리얼하게 잘 그려낸 그림책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재미삼아, 또는 심심해서 하는 행동인데, 주변 어른들이 보는 시선에 대한 잘 나타나 있다. 


에드와르도는 고양이를 잡으러 쫓아다니다 “인정머리 없는 녀성가!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녀석 같으니라고!”라는 소리를 들었다. 방을 잘 치울 줄 몰라 치우려다 오히려 어지르게 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뒤죽박죽 엉망인 녀석 같으니라고!”라는 소리를 들었다. 양치하고 씻는 것을 깜빡하자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라는 말도 들었다. 에드와르도는 점점 더 사나워졌고 게을러졌으며 지저분해졌다. 주변에서 어른들은 에드와르도를 볼 때마다 한결같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말썽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썽쟁이 에드와르도가 화분을 발로 차서 화분이 흙위로 떨어졌다. 지나가는 아저씨는 이 광경을 보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나 보구나. 정말 예쁘다.”라고 말했다. 에드와르도는 이 말을 듣고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에서 에드와르도에게 정원을 손 봐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어떤 날은 에드와르도가 지나가는 개에게 물을 끼얹었는데 “지저분한 개를 씻겨줘서 고맙다. 상냥한 아이구나.” 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날엔느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도저히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던 에드와르도가 창밖으로 옷들을 던져버렸다. 마침 가난한 사ᆞ갊에게 나눠줄 물건을 모으고 있던 아저씨가 “고맙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집ㅇ 있던 엄마는 동생들에게 “너희들도 에드와르도처럼 말끔하게 깨끗하게 치울 수 없겠니?”라고 말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던 에드와르도는 오랫동안 씨지 않아 냄새가 나서 파리에 쫓기다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에드와르도를 씻겨주었고 옷을 깨끗이 빨아주었다. 에드와르도가 학교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아이.”라고 말했다. 말썽쟁이에 지저분하고 천방지축인 에드와르도가 친절하고 상냥하며 동식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변한 것이다. 그동안 에드와르도를 피했던 친굳르은 점차 에드와르도 주변에 모여들었고, 에드와르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했다. 


화내고 다그치거나 혼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할까? 아이와 부모 모두 만족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어느 한 쪽만 만족하는 아이와 부모가 아니라 양쪽 모두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만 그게 그리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정답을 잘 알고 있다. 너무나 뻔한 답이라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닐지. 아니면 더 좋은 모범 답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칭찬‘이다.     


이 뻔하고 흔한 말을 곧이 또 한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리는 말처럼. 또 “칭찬은 보약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칭찬‘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게 할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칭찬과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비교금지‘이다. 어른인 우리도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면 싫은데 하물며 큰 애와 작은 애를 아이들 보는 데 앞에서 비교하는 건 아이들의 자존심을 꺾어버리는 셈이다. 꺾인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아이들은 억지로 더 발악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형제, 자매와 남매간의 비교보다는 각각의 대상이 잘하는 것을 칭찬하며 아이를 키워주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칭찬에 앞서 필요한 것이 ’관심‘이다. 이것은 칭찬보다 선행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관심 없이 칭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뭘 잘못했는지, 어떤 것을 잘했는지, 언제 잘못했는지, 언제 잘했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무조건 야단치고 혼내는 건 금물이다. 결과적으로 “잘했다.”라고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흡한 부분을 찾고 보완해가며 칭찬과 보상을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 칭찬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잘했다고만 하면 아이들의 나쁜 점에 가산점을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형제가 있었다.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잘 지내다가도 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동생은 형의 필통을 망가트리거나 숙제했던 종이를 찢어서 변기에 넣어버렸다. 어느 날,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에 형과 동생이 게임기로 놀고 있었는데 동생이 먼저 30분, 형이 나중에 30분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동생이 50분이 넘어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은 달라고 했지만 동생은 도망 다니고 약 올리면서 계속 게임을 했다. 화가 난 형은 도망가는 동생을 잡으려다가 실수로 거실장 위에 있던 커다란 화분을 넘어뜨리며 깨져버렸다.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화분이어서 형제는 겁을 잔뜩 먹었다.


외출한 부모님이 집에 도착했을 때, 동생은 현관 앞에서 울고 있었고 향은 청소기를 찾으러 베란다에 가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부모님은 어떻게 했을까? 거실은 엉망이고 싸운 흔적이 팍팍 났으며 아기던 화분은 깨져있으며, 어린 막내는 울고 있고, 형은 동생을 잘 돌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더구나 사랑스러운 막내둥이는 깨진 화분 조각에 발을 다친 상태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부모님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그렇지, 형이라는 게 동생 하나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니? 그래놓고 네가 형이야? 그러면서 형이니까 휴대폰 사달라고 조르질 않나, 방을 치우길 하나, 에고 못살아.”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과정을 보지 않고는 칭찬하거나 비난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과정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두고 칭찬하면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도 말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무조건 혼을 냈거나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면 다시금 되짚어보길 바란다. 내 아기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그 무엇‘을 생각해보고, 그때 부모인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반듸 점검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부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잘 지켜보면 내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 담긴 거울과도 같다. 얼룩진 거울에 비친 나의 비뚤어진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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