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24. 2023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그릠책 <강아지가 태어났어요>

내 아이가 가장 힘들어할 때, 가장 무서워할 때가 언제인지아시나요?

내 아이는 부모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논리를 숨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부모한테 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고민. 어떤 고민일까요?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요?


오늘은 맞벌이 부모, 또는 싱글망의 자녀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강아지가 태어났어요>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가 절판되어 책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브런치에 한 꼭지씩 올리고 있고 18꼭지 중 13번째 입니다. 책에서  다룬 사례는 15년 전의 상담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만 이 사례는 제 아이의 실제사례라 실명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최소 세 명 이상의 형제자매가 함께 살았다. 부모님이 바쁜 가정에서는 형제들이 부모 역할을 하며 서로 돕고 성장했다. 내게도 오빠가 세 명,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큰오빠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들 우리 공부를 봐주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큰오빠가 성적표를 검열하였고, 공부도 봐주었으며 동생과 다툴 때 부모님 대신 오빠들이 중재했고, 야단을 맞는 것도, 혼이 나는 것도 부모님보다 오빠들한테였다. 방과 후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 때도 오빠를 믿고 까불기도 했다. 공터에서 공을 차고 벽치기 놀이하다가도 친구들은 “밥 먹으러 들어와라.”의 엄마의 부름에 들어갔다. 나는 맨 마지막까지 놀다가 엄마가 차려 놓은 밥에 몇 가지 찬을 꺼내어 동생과 먹고 치우고 텔레비전을 보며 오빠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빠들이 오면 이불을 펴놓다가 배게 싸움과 서랍장을 뒤져 패션쑈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 심심할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외롭거나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형제가 없는 집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사실, 난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요즘 가정에서는 한 명, 많아야 두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맞벌이 부모들은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자녀들도 바쁘다. 학원 뺑뺑이를 돌고 과제에 치이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휴대폰 사용 시간과 sns에서 놀기에 익숙해졌다. 별다른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아이들도 바쁘다고 하지만 주변에 많은 지인과 자녀들은 외로움과 무서움, 혼자라는 느낌을 느끼는 게 싫어서 일부러 백색 소음을 켜놓고 외출한다고 한다.     

지금은 활달하고 낯가림이 없어졌지만, 외동딸인 아영이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두 살 때까지 무척이나 좋아하는 인형과 똑같이 생긴 동생을 사달라고 했고, 동생을 어디서 사와야 하는지도 물었다. 초등 2학년 때까지 동생을 사달라고 졸랐다. 외벌이인 나는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아영이를 찐하게 많이 돌볼 시간이 없었고 상대적으로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면 영어, 피아노, 태권도 학원으로 보내면서 아영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 애썼다. 딸아이 혼자 집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혼자 지내는 시간보다는 여럿이 함께 있는 게 안전하고 좋다고 여겼다. 상담한다는 것만 빼고는 여느 엄마랑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외부 일정이 끝나 집에 오면 단둘이 알차게 보내려 했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유치하게 놀아주는 엄마가 좋은지 잠자는 시간을 슬금슬금 늘린다. 책을 더 많이 들고 온다거나 꾸벅꾸벅 좋다가도 억지로 눈을 뜨며 밑도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엄마, 강아지 한 마리만 사줘라. 응?”

“안 돼요.”

“엄마, 난 무섭단 말야. 엄마가 늦게 들어올 때 얼마나 무서울지 알아?”

“안 돼요. 아영 씨.”

“엄마한테 전화했는데 전화 안 되면 엄마가 교통사고 났을까 봐 무섭고, 또 심심해.”

“엄마가 상담 중일 때는 전하 못 받는다는 거 알잖아. 그리고 엄마는 건강해요.”

“엄마, 강아지 사주면 피아노 안 간다고 떼쓰지 않을게요. 한 번만. 응>”

“안 돼요. 아영씨! 이제 그만.”

“나 아영씨 아니야. 난 아영이지. 엄마는 맨날 안 된대! 엄마 싫어!.”

“아영아, 이리 와 앉아 봐. 동물을 키운다는 건 그냥 집에서 인형놀이 하는 거와 달라요. 알잖아. 똥도 치워야 하고, 물도 갈아줘야 하고, 밥도 꼬박꼬박 줘야 해. 아프면 병원도 데려가야 하고.”

“알아. 내가 다할거야. 똥도 치우고, 아영이가 밥도 주고 목욕도 시켜줄거야. 응?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이런 식으로 아영이는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혼자 있을 때 무섭고 외롭다는 말도 했다. 옆 단지에 사는 큰 외삼촌 집에 가서 언니들과 놀라고 했지만 아영이는 집에서 엄마 기다리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나 편하자고 딸을 외롭게 키우는 건 아닌지,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아영이가 외로울 거라고는 생각은 자주 했다. 아무리 엄마가 잘 놀아주고, 여러 개 학원을 다닌다 해도 혼자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영이에겐 형제도 없었고, 엄마인 나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할 때였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거실이 엉망이었다. 장난감용 유모차, 소꿉놀이, 옷가지, 이불 등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그것도 부족해서 집에 있는 인형이란 이형은 모두 널브러져 있었다. 아영이는 엄마가 온 것도 모른 채 인형들을 돌보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했다. 아영이는 돌봄을 받고 싶을 만큼 인형을 돌봤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동물이나 인형들에게 그대로 마음을 전하는 말과 행동을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었고, 아영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2009년 10월 9일에 청계천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왔다. 족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직접 분양받은 강아지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귀여운 갈색 믹스견 강아지였다. 아영이가 직접 가서 고른 강아지는 귀엽고 건강해 보였다. 어떻게 골랐냐고 물으니 똘망똘망 쳐다보며 잘 기어다니는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다나 뭐라나. 검정색 털보다는 갈색 얼룩무늬가 예뻐 보였다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이렇게 우리는 새 식구를 맞았다. 새 식구의 이름은 “쫄병이”다. 우리 집 대장인 아영이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아영이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영이는 대장, 쫄병이,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는 즐거운 일상을 맞았다.




『강아지가 태어났어요』(조애너 콜 글, 제롬 웩슬러 사진, 비룡소)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그림책이라 사실감으로 더욱 책이 생생하다. 강아지가 태어날 때가 되자 어미 개는 상자에 신문지를 찢어 놓으며 새끼를 낳을 준비를 한다. 얇은 주머니에 싸여 나온 강아지를 엄마 개가 핥아준다. 세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는데, 이중 아기 주인공 강아지 이름은 토토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토는 눈이 붙어 있고 귀도 아직 닫혀 있어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음식도 씹을 수 없을 만큼 아기다. 하지만 차차 젖을 빨면서 태어난 지 2주 정도 되자 눈은 떠지고 귀를 열린다. 함께 산책하고 싶은데 토토는 아직 어려서 잠만 자고 하품만 한다. 시간이 지나자 걸음마도 떼고 접시에 담긴 우유도 마신다. 가끔은 엄마 개와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마당에서 다른 강아지들과 놀기도 한다. 8주가 지나자 엄마 개와 떨어져 산책을 할 수도 있게 된다.






아영이는 쫄병이가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이 책을 읽었다. 워낙 동실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그런지 지금도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이 책은 강아지를 돌보는 방법을 직접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강아지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이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실제로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 있다. 또한 글로 직접 적혀 있진 않지만, 강아지가 자랄 땐 순서가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 말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동물을 대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요소가 사랑과 돌봄이라는 것에 대해 잘 표현한 책이다. 사실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고, 꾸밈없는 책이라 나 또한 아영이 못지않게 좋아한다.      


강아지를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나는 여러 가지 걱정했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 안 봐도 뻔하니까 싫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아지를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강아지를 돌보면서 나와 관계가 더욱 좋아졌고, 무엇보다 생명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면서 돌봄을 직접적으로 배워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친구를 대할 때, 어른을 대할 때, 애완동물을 대할 때 예의를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는 것같다. 강아지가 밥을 잘 먹지 않거나 설사하면 아영이는 백과사전을 뒤져가며 치료법을 찾으며 돌봤다. 약국과 병원을 알아보고 밤세우며 돌보는 모습이 대견했다. 어떤 때는 내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면 “어디 아파?”라며 이마에 손을 대고, 배도 문질러주면서 전보다 더 주변을 살펴주고 엄마인 나도 돌봐준다. 가끔은 내가 잘못한 것으로 혼을 내면, 엄마한테 화났다는 이유로(꾸중들었을 때) 아영이는 쫄병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바로 쫄병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안아준다. 쫄병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혼내야 하는지도 스스로 알고 행동으로 옮겼다. 열 마디 잔소리보다 스스로 체험하면서 느끼는 깨우침이 훨씬 소중하다는 건 강조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솔직히 요즘은 우리 아영이가 똥 치우기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내 일이 하나 늘었다. 처음 약속 불이행으로 혼을 내기도 했고 잔소리하지만 소용없다. 그토록 다짐받았건만 아직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라는 게 확실하다. 그래도 똥 치우는 것 말고는 다른 약속은 잘 키지고 있어 대견하고 다행이다.     


강아지가 있어 좋은 점이 또 있다. 아영이는 겁과 두려움이 많은 아이다. 작년 봄에 공포영화 같은 꿈을 꾼 뒤로는 혼자 있거나 어두운 곳에 있는 것을 질색한다. 그 전 같았으면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나로서는 지방 강연에 특강이라도 가는 날엔 전화통에 불이 났었다. 언제 오느냐, 시간은 얼마나 걸리냐,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등, 돌아오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안심을 시켜줘야만 했다. 그런데 쫄병이가 우리 집에 온 뒤로는 그넌 전화 통화가 사라졌다. 9시에 잠들기 전 아영이는 이렇게 전화를 했다.


“엄마, 언제 와?”

“아마도 50분 후에 도착할 텐데.”

“엄마, 나 졸려. 빨리 와.”

“어떡하지? 엄마가 아무리 빨리 가도 금방 도착하지는 못하는데.”

“빨리 오면 좋은데. 그래도 괜찮아. 쫄병이가 있잖아. 엄마 나랑 쫄병이 혼내지 마. 홀병이랑 침대에서 같이 잘게.”

“노는 건 상관없지만 침대에서 같이 자는 건 안 되는데.”

“엄마. 그래도 봐 주라. 엄마가 지금 없으면 무서워저 잠도 못 잔단 말야. 지금 넘 졸려. 엄마 올 때까지 못 참는단 말야. 쫄병이 껴안고 자면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데. 엄마, 이번 한 번만. 응? 엄마.”

“알았어. 양치는 하고 누운 거지?”

“앗싸! 고맙습니다.”

그러면 조금 후에 문자가 온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트



늦은 귀갓길에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귀여운 엄마 딸, 아영이~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살롱ㅣ 육아상담 ㅣ 그림책테라피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학생인데 아직도 아기 이불을 빨고 덮고 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