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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플연가 May 19. 2016

'나무 위의 의자'_민율 작가

Artist Interview

“낯선 바람,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 

잠깐의 가랑비, 거친 소나기 

잎이 내는 파도소리, 살짝 찡그리고 보는 햇빛 

혼자 떠있는 별, 무심히 지나가는 새 

코 끝 빨개지는 찬 공기, 반짝거리는 어린 잎 

외롭지 않은 고요함, 파랗지만은 않은 하늘. 

그리고 기분 좋은 현기증.      

그때의 하늘과 함께 천천히 흔들리는 나무 끝 작은 의자 위에서-”      


- 민율 작가 노트 中 


나무의자, oil on canvas, 60.6x45.5cm, 2012


나뭇가지의 끝에 작은 의자가 놓여있다.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나무의자>는 잠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데서 시작되었다.

길가의 나무 혹은 도심 공원의 작은 숲, 멀리보이는 산의 나무위에 작은 의자를 하나 올려놓는다. 그리고 잠시 마음 한 조각 덜어내어 그 의자 위에 놓아둔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와도, 서늘하거나 어두운 밤이어도 좋다.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고 쓸쓸해 보이는 곳이지만 주변의 시끄럽고 복잡한 것들을 지워내고 나와 떠도는 공기만 있는 그곳에서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천천히 흔들려보기를 바란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어도 좋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것이며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작품들마다 계절, 시간대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작업을 시작할 때 색감이나 배경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까?

<나무의자>의 하늘은 당신이 잠시 쉬기를 원하는 바로 지금의 하늘이다. 그때가 밤일 수도, 노을이 뉘엿뉘엿해지는 때 일수도, 폭풍전야의 긴장되는 시간일수도, 코 끝 시린 한 겨울일수도, 햇빛 좋은 오후일수도 있다. 즉 나무의자의 하늘은 ‘바로 지금’라는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 하늘들을 표현하기 위해 계절과 시간이 다른 여러 하늘을 그리는 것이다. 


작업과정이 궁금하다. 풍성하게 채워진 나뭇가지들을 보면 작품에 오랜 시간이 느껴진다.

우선 나는 매일의 하늘을 관찰한다. (길을 갈 때면 항상 하늘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그 하늘들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 된 사진들 중 하나를 선택해 그림으로 옮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진짜 그때의 하늘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하늘을 그리는 과정은 가장 높은 하늘의 색을 칠하고 말린 후, 좀 더 나와 가까운 하늘의 색을 칠하고 말리고 그 높이의 구름들을 그리고 말리기를 반복한다, 하늘을 다 그리고 나면 그 위에 나무의 모양, 위치, 개수, 크기, 나뭇가지나 잎의 양, 등을 결정하기 위해 그려진 하늘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그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며칠 간 고민하고,  고민이 끝나면 나뭇가지를 그리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그리기는 시간과 인내만 있으면 된다. 나뭇가지를 그리다가  손가락 마디가 저릿저릿 해질 때 나무위에 의자를 그려 넣는다. 나무와 의자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인 모양으로 그리려고 노력한다. 하늘은 그때의 하늘이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의 하늘을 그리는 것이지만 나무나 의자는 언제 어디서든 있어야하는 것이기에 보편적인 모양으로 그린다.



매일의 하늘 사진들
나무를 그리기 전 하늘 작업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자신과 마주하는 작가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혼자 여행을 하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동네 공원 벤치에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거나, 혼자 네 다섯 정거장 정도를 천천히 걷거나 등등,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함께 라는 것도 즐겁고 중요하지만 혼자라는 시간이 갖는 또 다른 평안함을 즐기는 편이다. 


학부 시절 전공이 ‘지구과학’으로 독특하다. 작업을 하게 된 이유 혹은 작가로써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알고 싶다.

지구과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난 이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평생 한다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아닐 것 같다’였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바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시 미대 1학년에 입학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나무의자, oil on canvas, 116.7x80.3cm, 2015



작품 활동 이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작업을 안 할 때는 그냥 남들처럼 산다. 생계를 위해 돈도 벌고, 가끔 놀러도 다니고, 쓸데없는 취미에 빠지기도 하고... 참, 두 마리 고양이들과 아웅다웅하며 지내는 시간도 많다.


그럼 앞으로도 작가님의 작품들도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작업되는 것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나가고 싶은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숨겨 놓은 감성이 있다. 조금은 어린아이처럼 유치해서, 비생산적인 감정들이어서, 너무 바쁜 생활 속 시간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어느 순간 잊혀진 마음속 작은 감성들, 나는 이러한 아주 소소한 감성들을 일렁이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래서 소소한 이야기 시리즈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무의자> 이전 시리즈인 <상상씨앗 이야기>나 지금 준비 중인 <짧은 꼬리 고양이 트리>,<소소한 시간이 피어나다> 는 짧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가진 작업들이다. <나무의자> 역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없지만 쉬운 시 한편 같은 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작업들이 쌓여 나중에 마치 책장에서 편안히 책을 꺼내보듯 볼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다. 내가 늘어놓는 이러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며...




민율 작가님의 작품은 서촌 'Cafe KOSUI'에서 5월 16일 월요일부터 6월 12일 일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직접 보는 감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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