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꽃이 물을 만나
물의 꽃이 되듯
물이 꽃을 만나
꽃의 물이 되듯
밤하늘이 별을 만나
별의 밤하늘이 되듯
별이 밤하늘을 만나
밤하늘의 별이 되듯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내가 되듯
당신이 나를 만나
나의 당신이 되듯
- 기형도, [성체조배]
풍경 혹은 환상이란 제목처럼 풍경이지만 결국 내 마음속의 환상을 표현한 작업들이다. 구름이나 바다 하늘 등 주로 배경으로 존재해왔던 풍경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내가 무척 애착을 가진 대상들이다. 작품 속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지만 늘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내가 그림 밖에 있다. 내 눈으로 받아들인 후 감성을 입혀 다시 캔버스위에 표현된 이질적인 풍경인 것이다.
나는 추억이 환상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 곳의 풍경, 온도, 냄새 등 그 시간을 둘러싼 요소들이다. 그리고 꿈이나 이상향 역시 내가 상상하는 풍경으로 존재한다.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풍경이 아니라면 나에게는 추억도, 이상도 모두 환상이다.
내가 그린 풍경은 결국엔 내 환상이다.
채색을 시작하기 전에 완성된 그림의 느낌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생각해본다. 늘 원하는 느낌이 잘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생각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더라도 계속 수정을 해가며 표현하고 싶은 지점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물감의 색 그대로 쓰기보다는 늘 2-3가지의 색을 혼색해 사용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화가는 앙리 마티스와 에드바르 뭉크다. 마티스 그림의 강렬하고 화사한 지중해의 색감과 뭉크의 음울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을 흠모한다. 그 두 가지 느낌이 늘 내 그림 속에 담겨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내 그림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좌) 칠레의 색 1 / (우) 칠레의 색 2
세계 각국의 전통의상에 관한 일러스트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화려한 색상에 문양이 독특한 남미의 전통의상에 관심이 생겼다. 관련 사진들을 찾다가 수작업으로 직접 실을 염색하는 칠레의 염색공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게 된 것이 ‘칠레의 색1’이다. 염색된 다양한 색상의 실타래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을 그렸지만 사실은 다양한 사람들이 한군데에 모여 아등바등하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칠레에 가보지 못했지만 뜨거운 태양, 드넓은 고원, 그리고 컬러풀한 색상이 연상되어 영감을 많이 주는 나라다. 강렬한 색을 뽐내지만 한편으로는 ‘칠레의 색2’ 작업처럼 삭막한 느낌도 품고 있어서 나에게는 실재이기보다 환상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처음에는 일러스트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권의 특별하고 멋진 그림책을 접하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년 반 과정의 그림책 아카데미도 다녔다. 정작 진짜 하고 싶은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재는 어른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른들이 그림책을 많이 사서 보는 추세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그림과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이라면 분명 독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 계속 작업하면서 배워가고 있다.
회화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 담긴, 오래오래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새 작업을 시작하면 늘 작업일지를 늘 쓴다. 처음에 러프스케치와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작업에 들어간다.
스케치는 러프하게 하고 채색을 하면서 디테일하게 완성해간다.
중간과정에서 잘 안되거나 다른 방식을 적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처음에 계획한 대로만 하려고 하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편이다.
그래서 망치는 경우도 많고, 생각지도 못한 느낌을 내서 좋았던 적도 많다.
한 작업만 진행하기 보다는 2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편이다. 진행도 잘 되고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있어서 작업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색감에 대해서는 처음 계획과 너무 다르게 가지 않으려고 컨트롤을 하는 반면, 구상이나 작업방식은 많이 열어두는 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친구 두 명과 함께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아직 첫 책을 낸 것은 아니지만 세세하게 신경 쓸 일들이 많아 바쁜 시기를 보냈다. 그림만 그리다가 다른 분야에 손을 대니 새로운 재미가 있다. 덤으로 약간의 스트레스도 따라오긴 했다.
큰 수입을 내려는 마음보다는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만들고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다.
‘살아있는 밤’ 이란 작품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실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음악과 내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장면이다. 붉은 하늘과 기하학적인 산, 이상한 돌무덤과 검은 수풀......이런 요소들은 내가 평소 사용하거나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었음에도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고, 완성 된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수풀 어딘가에 슬픔이나 허물, 거짓 등 숨기고 싶거나 버리고 싶은 무엇인가를 감춰뒀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평소의 내 그림과 다른 새롭고 이질적인 느낌이 표현되었을 때 그 그림에 애착이 간다.
요즘은 심리에 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은 이 작업들을 더 탄탄하고 깊이 있게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그 동안은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에 대해 탐구했던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 낸 작업들을 하나씩 완성해 가는 단계인 것 같다. 작년부터 그림책작업과 페인팅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한 가지만 잘 하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고, 반면에 평소 하고 싶었던 페인팅작업을 시작하게 되어서 설레기도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작업을 해서 1-2년 한번 씩은 새로운 작업들로 전시회를 여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꾸준히 10년, 20년 하다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냐는 근거 없는 긍정으로 작업하며 지내고 있다.
정수진 작가님의 작품은 성수동 '레 필로소피'에서 5월 18일(월)부터 6월 15일(월)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