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_ 박진희 작가
밀랍 속에 뜨개 직물들의 형상을 덮어 가둬 두기만 했던 방식에서 이제는 그것을 조금 더 드러내는 작업의 변화는, 혼자만 간직하고 보호하려 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조금씩 꺼내 보여주고 나누고자 하는 내면의 변화를 반영한다.
좋은 경험이 인생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듯, 나의 작업을 통해 이를 대하는 누군가가 따뜻한 에너지와 경험을 공유하길 바란다.
- 박진희 작가 작업노트 中
유년시절의 따스한 기억을 담아내고 싶었고 보는이들에게도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의 어린시절에 존재하던 가장 가까운 소재들을 찾아 뜨개질을 하고 레고를 쌓아 프레임을 만들기도 한다. 이것들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나에게 일종의 놀이가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작품에서 등장하는 소재들은 대부분 유년시절부터 주변에 존재하던 나에게 친숙한 소재들이다. 어린시절 주변에는 어머니가 항상 하고 계시던 퀼트나 뜨개질로 만들어진 직물, 원목가구와 같은 섬세하고 따스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러한 주변 환경에서 가다듬어진것들이 내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중요한 소재들이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과거의 기억을 대변하고, 그 기억의 일부분은 밀랍이나 뜨개직물에 의해 감추어 지고 또 흐려진다. 시간과 기억을 매개로 하는 작품에서 기억의 단편들로 연결된 과거의 시간들이 그러한 행위를 통해 과거의 시간들을 구체화 시키며, 또 가려내고 은폐하는 작업 과정을 통해 흐려내어 모호하게 만들어내려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표현적인 면에서, 굉장히 여러분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원래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하지만 소재가 직물이어서 인지 패션분야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낸다. 또 가끔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주변의 보잘것 없는 작은 것에서 발견한 특별함이 작품의 영감으로 발전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흰색은 특별하다. 유년시절 기억 속 집안에 있던 대부분의 물건들이 모두 흰색이어서인지, 과거를 떠올리는 기억 속의 화면에는 흰색이라는 색채가 늘 존재했다. 이런것들로 부터 자연스럽게 작업 과정에서 흰색을 사용하게 된 것 같다.
상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흰색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자와 접촉하는 순간 바로 오염이 되어버리는 흰색은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의식 안에서나 확실한 순백으로 자리잡아지는 색이기 때문에 연약하다. 또 색이 없는 색인 흰색은 ‘부재’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틈이나 여백과 같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낳기도 한다. 이것들은 과거의 기억과 시간을 섬세하게 지워내거나 구체화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나의 작업과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이야기된다.
작품에서 밀랍은 외부를 차단시켜주는 보호막이나 벽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기억으로부터 기인한 실로 만들어진 뜨개직물들을 밀랍 안에 고착시켜 덮어 가리거나 일부분만을 드러내어 희미하게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연약하고 섬세한 의미들을 가진 단어나 글귀를 뜨개직물이 가리고 있다. 나의 작품이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고 따뜻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불안감이나 절망과 같은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들을 감추고, 추억이 가득한 장난감이나 유년에 대한 따뜻한 기억에서 기인한 실 등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과거의 따스한 기억으로 그것들을 보호받으려고 하는 것을 은유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작업들을 구상하면서 과거 기억 속의 소재들을 찾다가, 평소 좋아해 종종 제품을 수집하기도 하는 레고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업하게 되었다. 흰색 브릭만을 구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였기 때문에 재료를 공수하는일이 조금 어려웠지만 작업 과정은 여느 작업때보다 더 재밌게 진행되었다. 평소에 워낙 브릭 조립하는 일을 좋아했고 조립설명서가 아닌 상상만으로 프레임의 디테일을 만들어 나가는게 가장 흥미롭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서 이것 저것 많이 즐기고 공부하며 시도해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중단되었지만 어릴 때 읽던 만화책과 소설에 푹 빠져서 하나하나 다 찾아서 보는 중이다. 이것또한 유년시절 기억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또 다른 작업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도 가지고 있다. 또 최근 몇 년간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좋은경험 이었던 터라 앞으로도 시간 날 때 마다 많이 다니려고 한다.
작품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어 지금의 작업까지 진행되어 올 수 있게 한 2011년<Inner Fragments Series>연작의 최초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진의 작품은 최근에 작업한 연작으로 이어온 작품의 이미지이다.) 전시를 시작하자마자 판매가 되어 작업활동을 지금까지도 계속 할 수 있게 힘을 준 기특한 작품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소소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학교 청소아주머님의 실수로 버려진 작품, 해외 운송 과정 중 손상이 가서 작업실에 잠들어 있는 작품 등 하나 하나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있어 모두 애착이 가는 작품들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따뜻하고 행복한 좋은 기억, 슬픈 기억, 나쁜 기억 등 다양한 기억을 지니고서 튼튼해진 가장 강한 삶의 발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전적인 작품을 진행해 오고 있는 것 같다.
큰 맥락에서 기억이라는 주제를 계속 가지고 작업을 진행할 것이며 그것을 매개로 한 다양한 소재를 찾아가며 작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을 통해 예술과 삶의 필연적인 요소를 고찰하며, 본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세밀한 감정적인 요소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현시대의 예술은 일방적인 보여주기만이 아닌 관객과의 소통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관람하는 관객들이 공감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폭넓은 해석과 함께 그로 인해 따뜻함을 느끼고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박진희 작가님의 작품은 '서래마을 카페 레빗홀'에서 5월 28일 토요일부터 6월 26일 일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