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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플연가 Jun 21. 2016

어둠을 전시합니다.

북촌의 특별한 전시, '어둠 속의 대화'


보통 '전시 보러 갈래?' 라고 묻습니다.

전시(展示) 라는 단어 자체도 '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무언가를 '보러'간다고 생각했고, 시각이 당연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북촌에는 전시 감상의 기본이라 생각했던 시감각을 차단한 전시가 있습니다.

깊고 느린 북촌에서 어둠을 담고 있는 특별한 전시.


어둠 속의 대화입니다.




사람이 많은 중심지를 벗어나 안국역 위쪽, 북촌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어둠 속의 대화 북촌'이 보입니다.


"Dialogue in the Dark"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발' 사이에서 은은하게 스며나오는 빛은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합니다.



처음부터 '어둠을 담는 공간'을 짓고 싶다고 건축 사무소에 의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물 자체가 어둠 속의 대화 전시의 연장선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물리적, 시각적 감각과 한계를 최대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목적으로 지어진 전시장.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발'이었다고 합니다. 

발을 설치함으로써 전시장은 '분리'와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발을 내리면 건물 안은 어둠에 잠기고 외부와 분리됩니다. 그리고 발을 걷으면 소통이 시작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제된 듯한 회색 톤의 로비가 나타납니다.

예약한 시간와서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는 걸 추천합니다. 



로비 오른편에는 전시를 보러가기 전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어둠 속의 대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틀어주고 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Dr.Andreas Heinecke)에 의해 기획된 이 전시는

25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30개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신촌에서 처음 선보였고, 

2014년부터 이곳 북촌 상설 전시관으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맞은 편에는 점자로 제작된 노트, 엽서 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만나기 쉽지 않은 점자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어둠 속에서 진행 되는 전시이기 때문에 

휴대폰이나 시계처럼 빛을 낼 수 있는 소지품은 물품 보관함에 보관합니다. 



같은 시간에 예약한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시장으로 올라갑니다.



눈을 뜨셔도 되지만 안 뜨셔도 됩니다.
위험을 느낄 수 있으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많은 것을 볼 것입니다.



간단한 사전 설명을 끝난 후 직원분이 흰 지팡이를 건네줍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이 지팡이에만 의존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꼭 잡은 손에 땀이 고입니다. 



그렇게 암막 뒤 어둠 속으로 한 걸음씩 발을 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어둠' 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이런 것이구나'를 처음 느껴보았던 것 같습니다.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가 어떤 차이도 없는 암흑 그 자체. 


처음 느껴보는 새파란 어둠에서 오는 불안감을 딛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곧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를 맞이합니다.

예쁜 목소리의 그녀는 자신을 로드마스터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곤 따스한 목소리와 손길로 우리를 어둠 속에서 인도합니다.



100여분의 시간동안 로드 마스터와 함께 어둠 속을 걸으며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느낍니다.

어둠 속에도 일상이 존재하며, 전시장 안에서 이를 경험합니다.



나뭇잎의 촉감, 바람 소리,

그리고 커피 향



자연을 느껴보고, 시장에서 장도 보고, 카페에서 음료수도 마십니다.

일상 속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특별하고 새롭게 느껴집니다.


로드 마스터는 어둠 속에서 전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도움만을 줍니다.

처음 느꼈던 공포감과는 달리, 어느 새 어둠 속에서 자유로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새 10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로드 마스터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둠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많이 의지해서인지 작별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밝음.

다시 빛을 보니, 조금 전의 어둠도 빛처럼 따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평소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에 대해 더 이야기 해드리고 싶지만, 그것보단 직접 경험해보시는 것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기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시 마지막에 접하게 될 소소한 반전도 여러분을 위해 남겨둡니다. 



어둠 속에서의 특별한 전시가 선사하는 진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건물을 나섰을 때,

바닥에는 DIALOGUE IN THE DARK 라는 글귀가 점자로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북촌에서의 특별한 전시, 어둠 속의 대화를 감상해보세요.



                                                                 (ⓒ 와이즈 건축사무소, 이승숙, 어둠 속의 대화 홈페이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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