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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플연가 Jun 22. 201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현대 차 시리즈 2015 : 안규철

지난 주,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던 나날

예상치 못한 소포를 하나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언제나 즐겁기 마련이지요.

설레는 마음에 얼른 소포를 열어봤더니

책 한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상의 [날개] 입니다.

사실, 이 책은 특별한 이상의 [날개] 입니다.


바로 1,000명의 필사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죠.



지난 3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안규철 작가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전에서

천여 명의 관객이 전시 기간 동안 릴레이식으로 책을 필사하는 필경(筆耕)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관람객 단순히 전시를 보는 수동적 전시가 아니라, 작품의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 전시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시 이야기를 전할까 합니다.






현대 차 시리즈 2015 : 안규철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 시리즈는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2014년부터 10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미술가들에게 대규모 신작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안규철 작가는 <1,000명의 책>을 비롯한 총 8점의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안규철 작가는 1980년대 중반 부조리한 사회와 미술의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형 조각 작품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확장되어 설치 작업과 공공미술 작업을 해나갔고, 비판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대 미술의 대안에 대해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라는 이번 전시 명은,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인용한 것입니다.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서일까? 작가는 문학 텍스트에서 얻은 영감을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작가는 “비움으로써 채운다”라는 역설을 전제로 전시를 구성합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은 배제하고, 일상의 소박한 것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관람객들은 전시장에서 매 순간 진행 중인 작품들을 만나게 되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참여를 하는 생산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은 개인이 아닌 일시적 공동체를 이룹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와 미술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참여와 응답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참가자이고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일시적 공동체가 된다. 
소극적인 관람객에서 적극적인 참여자, 생산자가 된다.



아홉 마리의 금붕어

연못 속 아홉 마리 금붕어들은 9개의 동심원으로 구획된 각자의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무심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고독이 교차하는 역설의 풍경입니다



피아니스트와 조율사

정해진 시간에 전시실에 와서 같은 곡을 연주하는피아니스트가 있고, 피아노의 해머를 하나씩을 빼가는 조율사가 있습니다. 피아노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연주는 조금씩 해체되고 최종적 침묵을 향해 다가갑니다. 그것은 음악과 침묵, 의미와 무의미,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펼치는 2중주입니다.



1,000명의 책

전시기간 동안 1천여 명의 관객이 국내외 문학 작품을 연이어 필사하는 필경(筆耕)작업입니다. 웹사이트를 통해 일정을 예약한 참가자들은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서 각자 1시간씩 주어진 책을 필사합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손글씨를 쓰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은 작품생산에 동참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됩니다. 지나간 시대의유물처럼 밀려나 버린, 손으로 글 쓰는 행위의의미를 되새기고, 서로를 모르는 익명의 개인들이 공동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작업입니다.



식물의 시간 II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15개의 화분이 움직이는조각, 모빌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의 무게와 위치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식물들은두 개의 서로 다른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하나는 정해진 높이에서 궤도를 회전하는 수평적인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느린 성장을 계속하는 수직적인 움직임입니다.



기억의 벽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워하는 것, 부재하는 것의 이름들로 채워지는 거대한 벽입니다. 8,600개의 못이 촘촘히 박혀있는 이벽에는 관람객들이 단어를 써넣은 카드가 빼곡하게 걸립니다. 카드로 벽이 다 채워지면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카드가 걸립니다. 벽은 전시기간 동안 계속 변화하면서 카드섹 션과 비슷한 방식으로 시 한 구절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이것은 5개월동안 계속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애니메이션이될 것입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이렇게 모인수 만개의 단어를 정리해 ‘사라진 것들의 책’을 만듭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들, 지금 여기 없는 소중한 것들의 이름을 보존하는 기억의 책이 될것입니다.



64개의 방

검푸른 벨벳 커튼으로 구획된 64개의 방. 부드럽지만 무거운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면 바닷속처럼 어둡게 가라 앉은 고요한 공간이 미로처럼 이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빠져나갈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하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혼자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공간,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공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사물의 뒷모습

모자, 손수건, 공, 자전거, 멜로디언 같은 일상의 사물을 이용한 7개의 연작 영상작업입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사물과 인물들은, 무의미한 공회전을 반복하거나 끝없이 추락하거나 파편이 되어 사라지면서 세상의 질서로부터 이탈합니다.



침묵의 방

크고 둥근 공 모양의 텅 빈 공간입니다. 전시의 마지막 장면을 이루는 이 공간에서 관객은 무한한 허공에 던져진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말과 이미지와 음악과 글, 그리고 그 무수한 사물들이 모두 사라진 공간, 공허와 침묵으로 가득 차 있는 방입니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발길에 치이는 게 모두 사랑이고 입술에 발린게 모두 사랑인 이곳에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런 사랑 말고 다른 사랑이 있을 거라고, 그런 사랑의 나라를 상상해보자고 말하는 것은 무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다시 해야겠다.



7월 첫째 주, 둘째 주 화요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안규철 작가와 함께하는 '예술가의 런치박스'가 열립니다.

점심시간에 작가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림이야기를 할수 있는 시간으로, 작가의 대표작 '그 남자의 가방'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이 행사를 통해 좀 더 가까이에서 안규철 작가를 만나 그의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 안규철,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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