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는, 저마다 다른 것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들은
발견되고, 뭉개지고, 흩어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말한다.
이러한 풍경의 무의식 세계 속에 사는 우리는 그들을 사방에서 감각하고,
이따금씩 기억으로 되새기는 과정을 통하여 세계를 지속시킨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지속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무정형의 상태로 떠도는 상상의 기호들을 의미 없이 떠돌다 말아버리는 이미지의 무능 상태가 아니라,
해방된 이미지로 기억하고 그 존재를 드러내는 의미 덩어리들로 존재 시키고자 하였다.
- 주랑 작가 작업노트 中
매끈하게 잘 정돈된 하얀 캔버스 위에 연필로 여행에 대한 기억, 상상 등 글을 쓰듯 한 화면에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물거리는 연필의 다양한 선으로 그리는 풍경은 현대사회의 구조물과 우리나라의 산수가 어우러져 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 작품에는 그러한 유희적 요소들이 많이 숨어 있는데요. 이는 차를 타고 가면서 여정의 순간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의 집합체입니다. 또한 저는 제 드로잉을 '기억으로 쓰는 풍경화'라고 말하고 싶어요.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의 섬세함부터 거친 선과 모호한 이야기가 뒤섞여 서로의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정의 순간을 기억나게 하는 날씨, 소리, 상상 등이 무수히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이 소중한 개체는 그저 스치고 사라져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꽃피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서 보여지는 푸른색과 선은 소망의 덩어리이자 아주 여린 감성을 표현한 내면의 풍경과도 같습니다.
기억으로 쓰는 풍경화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영상 또는 움직이는 차 안에서 이미지로 여행하는 것이 제 작품의 주요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영상이든, 여행이든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 여행은 실제의 생경함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그 순간의 기억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개인전 준비로 방전된 에너지를 채우러 친구와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컵라면을 먹어도 즐겁고, 길을 헤매도 즐거운 그런 편안한 여행이요. 덕분에 지금 그 시간을 그리며 하며, 다음 작업을 힘차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벅찬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제목으로 표시해 두었어요. 그 중에서도 저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보러 가든 새롭게 체험한 그날의 분위기는 마치 여행과도 같습니다. 특히 집으로 가는 길은 제게 늘 여행이에요. 매번 같은 길이지만 (계절 때문인지, 부모님을 보러 가는 마음 때문인지) 항상 그리움과 애틋함이 더한 따뜻한 풍경이고, 여행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어딘가를 간다는 것은 제게 늘 새롭고 신나는 일 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어디론가 가는 것은 제게 모두 여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지의 에피소드 보다 여정에서 만난 풍경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비가 많이 오던 날 비를 피하지도 않고 부둣가에 떼지어 몰려있는 갈매기들, 송전탑의 구조물들이 변신할 것 만 같은 상상, 안개 낀 풍경 사이로 수줍은 얼굴을 드러낸 단풍, 장어들이 어항에서 헤엄치거나 정지하며 밖을 쳐다보는 이상한 상황 등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풍경은 저마다 자신의 동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을 그릴 때, 드문드문 기억나는 풍경들을 화면 여러 곳에 무작위적으로 펼쳐 놓습니다. 순차적인 상황의 서술이 아니라, 불현듯 찾아온 여행에 대한 기억을 아주 솔직하게 말합니다. 감정 그대로를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맨 처음 연필 끝이 닿는 캔버스의 표면을 가장 신경 쓰고 있습니다. 캔버스 바탕에 젯소를 여러 번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깨끗한 표면을 만듭니다. 잘 만들어진 그라운드 위의 시작은 완성을 보장합니다.
푸른색은 밝음과 어두움의 양면성을 뚜렷하게 가진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하늘색은 맑고 투명한 깨끗함을 우리에게 주지만 명도, 채도가 낮은 푸른색의 경우 극도의 우울함과 슬픔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또한 푸른색 안에는 차가움과 따뜻함의 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점은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로 연필로 작업을 합니다. 연필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해주는 가장 좋은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무겁거나 슬픈 감정이 들 때는 진하고 거친 선을, 솜털처럼 부드럽고 여린 감정을 전달 할 때는 4H 연필로 가장 연한 선을 연출하여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 자 하였습니다. 캔버스에 젯소를 여러 번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고를 반복한 캔버스 위에 따닥 부딪치는 연필의 촉감이 느껴질 때, 드로잉이 가장 즐겁습니다.
캔버스에 젯소를 여러 번 칠하여 사포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갈아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젯소를 여러 번 칠하여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어 냅니다. 여행의 풍경 또는 기억의 흔적을 연필로 자유롭게 드로잉 후 투명 미디움으로 선이 번지듯 하나의 덩어리로 묶고, 아크릴 또는 유화로 색채를 표현합니다.
올 후반기에 개인전이 있는데, 전반기 작업에 펼쳐 놓았던 다양한 여행의 시점을 묶을 수 있는 주제와 내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상징적인 기호로 두고 이것을 어떻게 회화적 방법으로 저의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 드라이브를 다니며 음악도 듣고, 걸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 외에 독서와 운동, 웨이크보드를 배우며 작업 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보면 볼 수록 좋은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2015년 작 중 <마터호른>이라는 작품이 그렇습니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와 여백은 매번 마음을 밝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마터호른 아래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은 자신의 모습을 앞 다퉈 드러내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유형을 담고자 하였고, '나'를 안아 주는 듯한 따뜻한 풍경을 그리고자 한 작품입니다.
현 시대의 우울한 감성의 풍경이 아닌 내면의 정체성을 담은 한국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의 경제와 사회, 문화의 구조는 자본화된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속에서 '나'를 찾는 다양한 시도의 작품을 통하여 인간성 회복 또는 감성의 시대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작품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연의 내면을 찾는 작품을 통하여 권력 지향적인 사회구조를 지양하고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로 존중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랑 작가님의 작품은 '서래마을 카페 레빗홀'에서 6월 27일 월요일부터 7월 25일 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