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굿즈 브랜드 ‘킬조이(killzoy)’를 만드는 사람들
옆에 앉은 동료가 주말에 사 온 뱃지를 자랑한다. “이거 예쁘죠?” 멋진 트럼프 카드 디자인의 뱃지. 우선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았고, 그 다음 누가 만들었는지 좀 더 길게 얘기해보라고 졸랐다. 팀 이름이 한 귀에 쏙 들어온다. 무려 창작 네임이 킬조이(killzoy), 즐거움을 깨버리는 당찬 이름을 가진 이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사회에서는 무례하고 불쾌한 말을 들었을 때 마땅한 지적을 하면 ‘프로불편러’, ‘예민보스’라 칭해지고 분위기를 깼다고 되려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당당히 “네가 지금 한 잘못된 말”에 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내는 페미니스트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혼자가지 않도록 이들의 움직임과 목소리에 힘을 싣는 페미니즘 굿즈 브랜드를 만드는 킬조이(killzoy)가 있다.
작년 10월달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면 정말 최근이다.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프라인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끌어오고 싶었는데, 손에 잡히는 페미니즘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생각이나 신념 등을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만드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행히 관심이 있었던거고. 킬조이 굿즈를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들고 다니고, 자부심 가지고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킬조이" 강렬한 이름이다, 기억하기 쉽다
이 말을 알게 된지 얼마 안됐다. 여성 혐오적인 발언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반박하는 ‘페미니스트 킬조이’(feminist killjoy)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말을 대학생활 한창할 때 알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회나 학교에서 조금 더 그런 습관이나 자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페미니즘 조기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세 분은 학교 친구 사이니까 교내에서 일어난 일이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있었다. 학교에서 선배들이 성희롱 발언을 한다거나 그런 것들. 학교에 다닐때는 그냥 ‘저 선배 싫다’ 그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저 말이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어디서 나온 잘못된 의식인지 알게되니까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유리 천장’ 같은 문제도 크게 와닿았다. 학교(디자인과)만 봐도 여자가 훨씬 많다. 여자는 30명이 넘고, 남자는 10명도 안된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는 여자분이 더 많은데 조명되는 스타 디자이너는 대부분 남성들이다. 나는 절대로 꿀려서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언가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다. 위로 가는 과정에 천장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실제로 ‘킬조이’를 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그렇게 정당한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상대방에서 왜 흥을 깨냐는 식의 면박을 준 적이 있을까
그냥 처음에는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게 어려웠는데, 그게 쌓여서 결국은 하게되는 것 같다. 그 순간에 분위기는 안 좋아질 수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한번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관계가 나빠진다기보다 상대방도 조금 더 생각해보고 이해해하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 같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면 계속 그게 옳다고 믿게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저거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고. 더 말을 해주고 그런 편이다. 예전에 자기가 했던 ‘킬조이’의 경험을 공유하는 캠페인을 한 적이 있다. 이 중 몇분에게는 상품도 드리고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줬고 나만 외롭게 가고 있지 않다는 연대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뱃지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갖고 싶다.
1차 뱃지에는 담배랑 해골이랑 하트에 칼 꽂힌 뱃지가 있다. 하트 뱃지에는 fight라고 적혀있는데 ‘함께 싸우자는 의미’가 담겨 있고, 담배 뱃지의 경우 여자가 담배피는 것을 나쁘게 보는 인식이 있는데, 그걸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해골은 nope이라고 적혀있는데,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디자인이 예뻐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예쁘면서 우리가 전하고싶은 의미도 간결하게 담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한다.
두번째 나온 뱃지들은 기존 제품들 중 반응이 괜찮을 것들을 골라 만들었다. 플레잉 카드에는 ‘노는’ 의미가 담겨져있다. 킬조이도 페미니즘도 재미있게 즐기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굿즈를 만드는 팀인데 어려움은 없나. 좀 진부한 질문이다.
엄청 많다. 너무 사소한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굿즈를 만드는 과정이 다 처음이었다. 목도리를 200개를 주문을 해서 직접 가지러 갔는데 3명이면 다 들고 올수있지 않나?’ 로 만만히 생각했다. 그런데 3명이서 택시 3대를 타고 가지고 왔다. 또 뱃지를 만들면서 손에 지문이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 제가 일하는 곳이 지문으로 출입을 하는 곳인데, 안찍혀서 손을 바꾸게 되었다. 하하.
또 신경을 많이 쓰는 건 내가 만든 창작물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지 않게 하는 것. 창작물을 보고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거나. 나의 안좋았던 기억을 환기시키게 된다거나 두번 상처를 주기 않게 위한 노력을 조금 하는 편이다. 2차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 하나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 수정을 정말 많이 한다.
굿즈를 통한 페미니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우리가 만든 굿즈를 보면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보조배터리, 맨투맨, 다이어리, 목도리 등의 일상 생활에서 쉽게 쓸 수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아르바이트하다가도 손님이 이런 굿즈를 들고 있는걸 보면 이 사람도 페미니스트구나 하면서 속으로 기쁘고 연대를 느낀다. 이처럼 일상 속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페미니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카드 놀이처럼 좀 더 편하게, 재미있게, 넓게”
킬조이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정의하나
다들 어렵게 생각하는게 있는 것 같다. ‘알아요?’ 라고 물어보면 다 모르고 배우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럴 필요가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고 쉬운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연대가 된다. 우리가 ‘학자’가 아니듯이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함께 배우고 같이 모여서 연대하고, 힘든 사람있으면 지지해주고 응원하는것.
정말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예전에는 기사를 볼 때 ‘xx 녀’라는 단어를 쓴 기사가 정말 많았는데 요즘은 xx남이라는 워딩이 나오기도 한다. 피해자임에도 가십거리로 느껴지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데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화두를 던지고 얘기를 하다보니까 기사 제목 부터가 조금씩 바뀌었다. 행동하면 조금씩 바뀌는구나. 이제 시작이지. 그런데 시작이 크다고 생각한다.
따로 킬조이에서 지향하는 페미니즘 안에 먼저 닿고싶은 목표가 있을까.
하나를 정하는게 조금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선후가 없다. 인권에 앞뒤가 어디있겠나. 아직은 무엇을 정하는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유리 천장, 임신중단 등 많은 문제가 있는데 우선 순위로 잡을 수가 없다.
지금 방향성을 계속 유지하는게 목표인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드는 것들,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은 즐겁게 진지하게 여겨주는 디자인 방향으로 갈 것 같다. 일단은 관심가져주시는 것들이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예 몰랐던 사람들이 이걸 사러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이걸 더 많이 알리는게 첫번째가 된다. 예뻐서 샀는데 그 다음 이야기와 의미를 알게 되는 과정이 좋다. 이걸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그냥 살 수 있게하는게 저희 목표다. 그런데 그게 아직은 좀 힘들다.
소비자의 입장으로써 페미니즘 관련 책이 나오면 거의 다 구매 하는 편이다. 이 소비도 목소리를 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관련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페미니스트끼리 지지와 연대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알라딘만 해도 ‘올해의 페미니즘 도서’라고 섹션이 따로 생겼다. 잡지들도 많이 생겼다. 더 많은 좋은 컨텐츠들이 나왔으면 한다.
앞으로 킬조이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지 듣고 싶다.
만남의 공간이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연대하거나 협업하고 싶으면 정말 편하게 연락줬으면 하는게 있다. 이건 실어줬으면 한다. “WANTED - 공간, 협업, 투자자!” 계속 얘기하는 거지만 온라인에서는 많이 얘기가 많은데 오프라인에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청담동에는 페미니즘 북카페가 생겼다고 들었다.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작년 연말에 햇빛 서점에서 페미니즘 굿즈 온리전인 ‘후로파간다’가 열렸는데, 많은 분들이 그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무래도 공간을 만드는 건,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이 안되니까 시도 자체가 조금 망설여지는게 있다. 다들 필요성은 느끼지만 독립적으로 시도하는게 어렵다. 꿈이다. 셋이서 운영하고 그런 모습. 공간, 연대할 동료, 투자자가 필요하다. (하하)
"나 때문에 흥이 깨져버렸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게 킬조이합시다”
리워드 후원 링크 > https://7pictures.co.kr/products/killz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