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우리는 눈 앞에 실재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평소에 자주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기에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자주 보아왔던 풍경의 모습으로기억한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작가노트 중
차창밖으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시골의 논밭 풍경을 수묵과 컬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고 그리는 것이 좋아 산수화를 전공으로 택하고 그리게 되었지만, 산과 물을 주제로 다루는 전통적인 산수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논과 밭이라는 소재에 주목하여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화면 속 풍경은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 마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친숙한 느낌을 주는데,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은 기억의 풍경을 끄집어내고자 하였습니다.
논과 밭의 곡선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논밭시리즈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곡선의 형태미를 좀더 부각시키기위해 일부러 색감을 넣어 표현하였습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드문드문 가옥이 보이는데, 논밭, 가옥과 같은 인간의 손이 닿은 요소들은 색감을 넣어 처리하고 산, 나무와 같은 자연물은 수묵으로 처리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도 손으로 그리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좋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뭇잎 하나하나 붓질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사라지는 것 같고요. 작업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먼저 먹으로 그려야 할 부분을 모두 그리고 마지막에 전체 화면에 어울릴 것 같은 색감을 찾아 논밭에 입힙니다.
저는 도시에서의 삶이 더 좋습니다.(웃음) 시골에서의 생활이 도시보다 더 여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복잡한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맘편하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한가로운 시골에 가서도 불안해 할 테니까요. 모두 마음먹기 나름이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요. 또 작업을 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붓을 내려놓고 아이와 자석블럭으로 만들기도 해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만들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저도 점점 재미를 느끼고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기도 합니다.
제가 중국에서 10년 정도 생활했으니 짧지만은 않았다고 보는데요, 작가로써 다른 환경에서의 경험은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떠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접해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우리 나라와 다른 곳을 길게 여행하거나 에너지 넘치는 여러 외국 작가들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대학원 시절 중국인 친구들, 교수님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 한 달 정도 머무르며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밤마다 서로의 작품을 펼쳐놓고 보며 평가를 가졌던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경험으로 남습니다. 슈퍼 하나 찾아보기 힘든 산골 마을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먹는 것도 입에 안 맞아 많이 불편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그림에 집중하고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써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신 없고 난장판인 집 안에서 생활하니 그림만이라도 차분한 풍경을 그리고 싶은게 아닌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앞으로도 계속 자연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업을 이어갈 것 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시도해 온 수묵, 아크릴, 꼴라쥬, 오브제 등 그 표현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겠지만 자연이라는 커다란 주제는 변함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예술이란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 바로 자연이니까요. 현재로서는 당분간 논밭 시리즈를 이어가려고 하며, 올해 신작에서 논밭과 도심의 경계를 보여주는 작업을 시도해 볼 예정입니다.
이한정 작가님의 작품은 '한남동 카페톨릭스 3층(다락)'에서 3월 16일 수요일부터 4월 5일 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