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묻는다."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한밤의 기적소리 만큼" 이라고 대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中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옛날의 모습을 봤다. 사진 속에 담긴 모습은 그저 한 부분일 뿐이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과 그 날의 상황과 분위기 모두를 봤다. 아이들의 단편적인 행동은 내 어릴 적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 조차도 잃어버린 기억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간직해주지 않으면 잃어버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이들에게서 어떤 모습을 발견하면 카메라를 든다. 머리 속에 ‘이것은 담아야 한다’라는 판단이 선다. 그리고, 담는다. 그게 다다.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인물 사진을 촬영할 때 ‘들이대는’ 구도를 좋아한다. 뷰파인더 안에 꽉 찬 인물에는 감정이 서려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 전체를 살아있는 느낌으로 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림 그 인물의 감정도 극대화 된다고 믿는다.
아이들 촬영을 할 때의 방법을 설명하자면 주로 어떤 모습을 봤을 때는 내가 그것을 담기 위해 기다리는 편이다. 때로는 내가 그들에게 발견되어 흐름이 깨지면, 내가 그 흐름을 만든다. 장난을 치기도 하고, 말을 걸거나, 눈빛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쓴다. 그렇게 새로운 흐름을 만들면 새로운 그림이 나오고, 난 그것을 담는다. 목적은 수집이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이 사진이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목적을 늘 갖고 있다. 그대로 담아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순간을 봤어!’ 라고 말하고 싶다. 리터칭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디지털 암실(Lightroom)에서의 색감 표현이나 필름 작업을 좋아한다. 그게 사실적이고,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이를 커머셜과 아트워크 둘 다 병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메인 커리어는 스트릿 패션 촬영인데, 현장에서 팔릴 사진과 내가 좋아하는 사진 두 가지를 함께 촬영한다. 기타 상업 촬영도 하고 있다. 상업촬영에서는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들도 많고, 오히려 배워야 할 것도 많아서 늘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마다 개인 작업으로 인물 사진을 찍는다. 요즘은 필름 사진 촬영을 많이 한다. 주로 폰 카메라로 하던 일상의 소소한 것을 담는다. 왠지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20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기본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절을 당할 때. 가끔은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이런 촬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이해할 수 있으나 사이비 신도 취급이나 헌팅 하는 사람 같은 취급을 당할 때가 간혹 있다. 그럴 땐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나쁘다. 또, 해외 패션위크와는 다르게 유독 서울 패션위크는 10-20대들의 패션놀이의 장으로 변질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서 셀러브리티 혹은 모델들을 촬영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모델들 촬영을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이로 인해 할 일을 못 할 때도 간혹 있다. 마지막으로, 패션위크가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리터칭을 해 사진을 업로드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주, 두 주가 가버리면 이미 옛날 사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매체에서 구매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런 것들이 애매하고 힘들다.
요즘 촬영 간에는 재미있는 경험들이 많다. 최근 패션 위크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보게 되었는데, 주로 영어로 말을 걸고 나면 다들 한국말을 엄청 잘 하는 사람이더라. 어떤 분은 한참 영어로 대화하다가 “너 영어 잘하네”라고 저한테 말하길래 저는 “아니 나도 모르는 말 많아서 가끔 힘들어”라고 하니까 “그럼 한국말로 할게요”라고 바로 한국말로 말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페이스북에서 한국 이름으로 찾기도 하고. 어떤 분은 영어로 한참 말 걸고 나니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들을 글로 써보고 싶어 요즘에는 SNS에 글을 적는 중이다.
작년에 ‘몰타’라는 나라에서 6개월 간 살았던 적이 있다. 어학연수 겸 유럽 여행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이었다. 당시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던 친구 중 한 명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패션 모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사진 촬영을 제안했고, 그 날 오후에 그녀의 집에서 화이트 나시와 핫팬츠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많은 포토그래퍼를 만나봤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뽑아내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내가 최고라는 뜻이 아니라, 찍으면 찍는 족족 거의 다 마음에 든다는 뜻) 그래서, 날도 좋은데 비키니도 한번 찍어볼래? 라고 제안했고 그녀는 신이 나서 비키니를 세 종류 정도 갈아입으면서 뭐가 낫냐고 의견을 물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그녀의 집 앞 해변가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 중 한 장은 내 인생에 길이 남을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아참, 여담이지만 그녀는 김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시안 마켓 위치를 물어보고 직접 사먹을 정도로.
남자로써의 삶이 안정되지 못한 것 같다. 나이가 꽤 찼고 친구들은 자리를 잡았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있는 것 같다. 너는 곧 죽어도 사진을 찍어야만 할 사람이고, 언젠간 될 거야 라고 희망고문을 하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돈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칠 때, 부모님이 경제력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힘들게 할 때가 고민이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면 더 많은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발견하는 것을 위주로 찍을 예정이다. 허나, 요즘에는 연작을 촬영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재작년에는 사람의 얼굴을 많이 찍었고, 작년에는 담배 피는 모습, 올해는 사람의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많이 찍었는데, 아마도 그 해 마다 내가 보고 발견하는 것들이 방향이 될 것 같다.
정재훈 작가님의 작품은 경리단길 '공사커피'에서 4월 7일 목요일부터 5월 5일 목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